초기 남성 동성애자 그룹에서 집중 발병… ‘게이 암’으로 불려

국민일보

초기 남성 동성애자 그룹에서 집중 발병… ‘게이 암’으로 불려

김지연 약사의 ‘덮으려는 자 펼치려는 자’ <11> 남성간 성행위와 에이즈(1)

입력 2019-09-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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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인 김지연 약사가 지난 2월 경기도 용인 명지대 강당에서 지구촌교회 청년들에게 성경적 성가치관 교육을 하고 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에이즈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묻는 사람들이 꽤 많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홈페이지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즉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처음부터 인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중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침팬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원숭이 면역결핍 바이러스(SIV, Simian immunodeficiency Virus)가 인체에 들어와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로 활동하게 됐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에이즈는 원숭이의 바이러스가 피를 통해 직접 인간의 혈중으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질병 전파가 시작됐다. 이처럼 동물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이 인간에게 전염돼 발생하는 질병을 동물원성 감염증(Zoonosis)이라고 한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홈페이지에 동물원성 감염증 43개를 나열하고 있다. 에이즈뿐 아니라 탄저병, 에볼라, 조류독감, 흑사병과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동물원성 감염증에 해당한다.

1970년대 남성 동성애자 그룹을 치료했던 의료진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이들 그룹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에이즈라고 부르고 HIV라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임을 알지만, 그 당시엔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1960~70년대 남성 동성애자에게 구강 칸디다, 카포시 종양, 카리니 폐렴 등 다수의 병증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이것이 진균증인지 암인지 박테리아성 질환인지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며 일반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종의 증후군이나 암의 일종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1981년 6월 5일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성 동성애자 중 비교적 희귀한 형태의 폐렴인 카리니 폐렴에 관한 최초의 경고를 발표했다.

같은 해 질병관리본부는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암의 일종인 카포시 육종이 훨씬 자주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처음에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질병을 ‘게이 암(gay cancer)’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GRID(gay related immune deficiency, 게이 관련 면역 결핍증)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해 뉴욕타임스는 이런 질병 확산 현상을 “41명의 동성애자들에게서 보인 희귀한 암(Rare cancer seen-in 41 homosexuals)”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세계 최초의 에이즈 예방단체인 ‘게이 남성의 건강 위기(GMHC)’의 홈페이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에이즈 단체는 어디일까. 놀랍게도 민간인, 특히 남성 동성애자 6명이 설립한 ‘게이 남성의 건강 위기(GMHC, Gay Men’s Health Crisis)’라는 단체다. 이 단체의 설립 배경을 보면 초기 미국 에이즈 확산의 주된 계층이 남성 동성애자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1982년 게이 암에 대처하고 연구 자금을 모으기 위해 맨해튼의 어느 아파트에 모였다. 이 비공식 회의는 GMHC 설립의 시작이 됐다. GMHC의 실제 이야기는 ‘더 노멀 하트(The normal heart)’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영화뿐 아니라 미국 TV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이 영화는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질병에 걸린 수많은 남성 동성애자의 애환을 보여준다. 남성 동성애자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에이즈에 걸려 사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1984년까지만 해도 에이즈 근절을 위해 GMHC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미국의 초기 에이즈 연구가 남성 동성애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이런 공로가 있는 단체이지만 다수의 동성애자는 이 단체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GMHC의 역사와 존재가 에이즈 확산의 주된 경로가 무엇인지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 친동성애 진영 역시 이 단체의 존재 자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GMHC는 홈페이지에서 6명의 남성 동성애자 및 친구들(six gay men and their friends)이 모여 만든 세계 최초의 에이즈 예방단체라고 당당히 소개하고 있다.

이후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수많은 연구 끝에 이 새로운 질병이 암이 아닌 전염병이라고 선언했다. 때마침 1983년 프랑스의 뤼크 몽타니에 박사팀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처음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김지연 약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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