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광대한 세계 앞에 서다

국민일보

[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광대한 세계 앞에 서다

입력 2019-09-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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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가 처연하다.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옴을 직감하기 때문이리라. 땅 속에서 여러 해를 보내고 우화등선의 꿈을 이루었으나 때가 되면 떠날 수밖에 없는 것. 모든 생명이 애틋한 것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공원을 소리로 가득 채우다가 때로는 방범창에 붙어 아침의 고요를 깨우는 매미 울음소리도, 공연히 헤덤비며 앞길을 가로막는 비둘기도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작정한다. 푸르른 나날을 뒤로 하고 햇살을 머금은 듯 애잔잔해 보이는 나뭇잎에도 잠시 눈길을 준다. 시간은 잔인한 포식자여서 모든 것을 삼켜버리지만, 가끔은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시간은 또한 리듬의 창조자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지만 시간이 만들어놓은 무늬는 늘 새롭다.

우리는 저마다 몸으로 시간의 무늬를 그린다. 얼마 전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그의 꿈은 가수였다. 대학에 진학해 한 학기를 다니고 학교를 떠난 것은 연습생이 되고 싶어서였다. 여러 해 동안의 피나는 훈련 끝에 마침내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뛸 듯이 기뻤지만, 기쁨의 순간은 잠깐이고 말할 수 없는 불안과 허무가 그의 존재 전체를 채웠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산 정상을 보고 허위단심으로 걸어왔는데, 산마루에 당도한 순간 그보다 더 높은 수많은 봉우리가 보였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에 주목한 지인이 그를 찬양의 세계로 이끌었다. 현실로부터 비겁하게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마음을 담아 부르는 찬양이 그를 어루만졌다.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였다. 지향이 분명해지자 두려움도, 성취에 대한 과도한 욕망도 스러졌다. 설렘과 감사만 남았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를 찾는다. 형편에 따라 초원을 찾거나 광야로 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일상과 동떨어진 그런 장소를 찾는 것은 세상에 적응하느라 잗다랗게 변해버린 마음을 내려놓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에 마음을 두고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했다. 그 마음 알 것 같다. 우리는 누구도 마음의 주인으로 살지 못한다. 유동하는 마음이 우리 삶을 사정없이 뒤흔드니 말이다.

19세기 초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자주 들여다본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도 좋지만 내 마음을 온통 잡아 끄는 것은 ‘바닷가의 수도사’이다. 화가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대지를 화면에 불균등하게 배치하고 있다. 광활한 하늘, 세상의 모든 어둠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바다, 상처와 슬픔이 모여들어서일까. 난바다에 보일듯 말듯 하얀 파도가 빛처럼 일렁인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회갈색 대지.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은 먹구름 탓인지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구름 너머로부터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그 빛을 받은 높은 하늘은 맑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대지 위에는 작은 점처럼 한 사람이 등을 보인 채 서 있다. 광막하고 허허로운 풍경 앞에서 그는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일까. 카스파는 그를 수도자로 상정하고 있다. 수도자는 영원의 세계를 찾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이다. 대지 위에 굳게 서서 저 광대한 세계를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가 구도가 아닐까.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둠일까, 빛일까. 어쩌면 빛을 내포한 어둠 혹은 어둠을 품고 있는 빛인지도 모르겠다.

현실로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악다구니와 고함, 저주와 능멸, 모욕과 비하, 폭언과 위협의 언사가 횡행하고 있다. 길 광장 찻집을 가리지 않는다. 떠도는 그 말들이 우리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과잉된 감정들이 이성을 저만치 몰아낸다. 네 편 내 편 가르며 싸우느라 이미 내상을 입은 정신은 점점 탄력을 잃어버린다. 희나리를 태울 때 자욱하게 일어나는 연기처럼 무르익지 않는 사상과 견해들이 자아내는 혼돈이 자못 심각한 지경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역사 전체를 카스파가 그린 저 광대무변의 세계 앞에 세우고 싶다. 시간 속을 바장이는 동안 우리에게 스며든 온갖 견해와 생각을 저 큰 세계 앞에 잠시 내려놓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보면 좋겠다. 바야흐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왔다.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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