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하라 (4) 결코 잊을 수 없는 첫 아이 울음소리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오하라 (4) 결코 잊을 수 없는 첫 아이 울음소리

어린 나이에 살림 할 수 있을까 걱정에 애들 낳자마자 양가 부모님이 키우셔 손수 돌보지 못한 아쉬움 커

입력 2019-09-05 00:01 수정 2019-09-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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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오하라씨가 1995년 9월 15일 생일을 맞은 딸을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1990년 9월 15일 새벽 5시50분쯤 내 귀에 들리는 작고 가냘픈 울음소리. 나는 갓 태어난 첫아이의 울음소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딸아이가 지금은 두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2년 뒤엔 씩씩한 아들이 태어났고 그 녀석도 지금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어엿한 가장으로 살고 있다.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그래서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께서는 나이도 어린 내가 제대로 살림하며 살 수 있을까 늘 걱정하셨다. 그런 까닭에 첫애는 낳자마자 얼마 안 돼 시부모님께서 키워주시겠다며 자주 데리고 가셨다. 둘째 역시 딸 하나만 낳으신 외할머니께서 이게 얼마 만에 얻은 아들이냐며 안고 가시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손수 키우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시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께서도 온갖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우셨겠지만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지금 나의 생각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언젠가 육아도서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라는 책을 읽고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되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필독하시길 권한다. 당시 남편은 자영업을 했고 나는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늘 집 안에서 살림만 하며 지냈다. 두 아이도 어린 시절의 나 못지않게 극성맞은 말썽꾸러기들이었다. 때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큰아이는 목소리나 말투며 성격이 선머슴 같으면서도 첫째라 그런지 생각이 깊고 아량이 넓다. 둘째 녀석은 딱 벌어진 어깨며 덩치가 커서 의젓한 듯 보이면서도 호기심 넘치고 애교가 많은 장난꾸러기였다.

그리고 어릴 적엔 못 말리는 마마보이였다. 어쩌다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둘째 녀석의 전화 폭탄에 구경이고 뭐고 통화만 하느라 친구들이 가자미눈을 뜨고 나를 째려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아들의 그 지나친 관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 때론 그때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작 행복한 그 순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음에 빠지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기쁘고 복되게 살며 그 축복을 순간순간 만끽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앞을 볼 수 없게 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난 터라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손자 손녀들과 함께 밖에 나가게 되면 아이들이 나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에 사람들이 진짜 할머니냐고 되묻곤 하는 걸 보면 아직 그리 심하게 늙은 것은 아닌 듯해서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외모의 덜 늙음에 대한 위안보다 주님을 향한 마음의 청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외조부모님을 비롯해 다섯 식구였던 우리 집안은 지금은 10여명으로 대가족이 됐다. 가족 모임이나 명절에 모이면 제법 북적북적해서 정말 즐겁고 행복해졌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다. 엄마가 내게 주신 사랑의 불씨가 이제는 여러 개의 촛불에 타오르는 불꽃이 돼 주님 앞에 감사로 사랑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다시 한번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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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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