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가짜뉴스는 열린 사회의 적이다

국민일보

[염성덕 칼럼] 가짜뉴스는 열린 사회의 적이다

입력 2019-09-04 04:01

권력이 제공하는 가짜뉴스의 파괴력과 폐해는 상상을 초월
조국의, 조국에 의한, 조국을 위한 원맨쇼 보기 민망해
윤석열 총장은 검찰 명운 걸고 조국의 각종 의혹 파헤쳐야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는 여성들이 제주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됐다는 내용을 1982년 아사히신문에 제보했다. 이 신문은 인터뷰를 토대로 다수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그는 나중에 자서전을 많이 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했다. 신문은 자체 조사를 벌여 2014년 8월 기사들을 취소했다. 보도 이후 기사를 취소하기까지 32년이 걸렸다.

북한 잠수함을 타고 무장공비 26명이 강원도 강릉 해안으로 침투한 1996년 9월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19명이 생포·사살되고 7명이 도주하고 있을 때 경북 봉화군의 50대 여성이 무장공비 출현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여성은 공비로 추정되는 괴한의 행적과 인상착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군·경이 검문·수색작전에 돌입했고 언론들이 크게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은 보상금을 타기 위해 거짓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들은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내고 말았다.

개인보다는 권력이 가짜뉴스를 제공할 때가 훨씬 위험하다. 권력발 가짜뉴스의 파괴력과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권력은 치부를 숨기거나 잘못된 정책을 은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미국에서조차 권력은 가짜뉴스를 생산한다. 독재국가의 수장이 아니라 선출된 대통령과 집권층도 자기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팩트를 왜곡한다.

실화를 다룬 영화 ‘더 포스트’와 ‘충격과 공포’는 미국 권력층이 자행한 사실 은폐와 조작, 협박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뉴욕타임스가 베트남전쟁의 1급 기밀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특종 보도한다. 정부는 관련 보도 금지령을 내린다. 경쟁지 워싱턴포스트가 수천 장에 달하는 기밀문서를 손에 넣는다. 미국 당국자는 기사 보류와 자료 반납을 요구한다. 백기투항을 강요한 것이다. 신문사 간부들은 국민 안녕, 언론 자유, 언론 책임, 회사 경영, 미군 안전 등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한 끝에 보도를 결정한다. 정부는 소송을 제기한다. 신문사는 패소하면 간판을 내려야 하는 위기에 직면한다. 대법원은 신문사의 손을 들어준다. 신문사 사장은 우리가 항상 옳을 수는 없지만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신념을 표출한다.

신문사 간부들의 고뇌에 찬 결단과 대법원 판결문을 소개하는 명대사들은 음미할 만하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것이다.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발행뿐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을 수호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 아주 간결하지만 언론인의 철학과 자세를 강조한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패소한 백악관은 신문사에 분풀이를 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단 한 명도 백악관에 들이지 마. 명령을 어기면 해고야.”

‘충격과 공포’는 권·언 유착과 팩트 왜곡을 다른 언론이 폭로하는 내용이다. 미국 부통령과 국방장관 등이 9·11 테러 사건 이후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짜뉴스를 기획한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고 주장한다.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유명한 뉴욕타임스가 이번에는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한다. 미국 정부는 군사작전인 ‘충격과 공포’에 돌입한다. 신문사들의 컨소시엄인 ‘나이트 리더’는 집요한 취재 끝에 정부 주장이 허구임을 밝혀낸다. 이 작전의 결과는 참담했다. ‘미군 사상자 3만6000명 이상, 이라크인 사상자 100만명 이상, 대량살상무기 발견 0건, 전쟁비용 2조 달러.’ 뉴욕타임스는 사과문을 내는 수모를 당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은 “제 딸이 문제의 논문 덕분에 대학 또는 대학원에 부정입학했다는 의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아이 문제에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기된 각종 의혹을 부인했다. 조국의, 조국에 의한, 조국을 위한 원맨쇼이자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것은 민망했다.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 과정을 보면 조국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권의 조국 감싸기는 도를 넘어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 수사에 대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행위”라고 비난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저질 스릴러”라고 폄훼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은 범죄”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팀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는 조국의 딸을 두둔하는 주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와 법원의 영장 발부는 혐의를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다. 여권의 반응은 검찰과 법원의 엄정한 법 집행을 방해하는 궤변이다. 윤 총장은 검찰의 명운을 걸고 조국의 각종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 ‘적폐 검찰’이라고 공격하는 여권에 굴복하면 안 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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