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위러브, 예배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위러브, 예배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입력 2019-09-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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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젊은이들의 각종 집회에선 찬양팀 ‘위러브’의 노래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이 불렸다. 20대 초중반의 평범한 젊은이로 구성된 이 팀은 몇 년 전부터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더니, 이제는 말 그대로 ‘대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 팀을 소개하기에 앞서 국내의 ‘경배와 찬양’ 문화를 돌아보는 게 좋겠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교회에서 본격화된 경배와 찬양 운동은 기존 장년 세대의 공예배 시스템과 구별된 청년층의 자생적 문화 운동이었다. 악기와 음악 스타일 때문에 기성세대와 갈등이 있었지만, 이 운동은 문화를 넘어 예배 자체에 대한 진지한 반응으로 신학적 연구와 형식적 갱신에 크게 이바지했다.

예수전도단부터 두란노 다드림 찬미예수 임마누엘 디사이플즈 어노인팅 마커스 제이어스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를 대표하는 굵직한 찬양팀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이전의 국내외 워십 운동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사역과 음악적 방향을 제시했다.

60년대 이후 청년문화는 대중문화사에서 패션 음악과 함께 자신들만의 클럽에서 상호 교류와 문화 확장의 기능을 수행했다. 이들에게 클럽은 새로운 스타일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특정한 장소였다. 기성 문화와 구별된 경험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의식(ritual)을 제공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배와 찬양 운동은 복음주의 청년에게 일종의 클럽 문화였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매주 목요일 또는 화요일 저녁에 출석 교회가 아닌 여러 경건한 클럽들로 각자 취향에 따라 모여들었다.

이전의 찬양팀과 구별된 위러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이들은 교회나 정기적 집회를 기반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대신 유튜브와 각종 SNS로 자신을 알리고 영향력을 확장해갔다. 이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그들의 ‘성소’(sanctuary)이자 클럽인 셈이다.

위러브 동영상을 보면 이 팀은 인도자와 청중, 무대와 객석의 구별을 해체하는 공간 재편을 시도한다. 중앙에 마련된 무대 주변을 회중이 원으로 둘러싼다. 무대는 결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물론 교회도 아니다. 입주 직전의 상가건물 한 층을 불법 점거한 것 같은 미지의 장소다. 원형 무대로 꾀한 공간혁명은 이들 예배의 핵심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들은 교회의 초청에 잘 응하지 않는다. 국내 일반적 교회의 구조가 이들의 예배 세팅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이 시작되면 누가 인도자이고 청중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한 명의 탁월한 찬양인도자가 주도하는 방식도 아니다. 가사를 미리 불러주지도 않으며 예배를 종용하는 말도 전혀 없다. 현란한 창법과 화음도 없이 그저 다 함께 노래한다.

이들의 동영상은 여러 대의 카메라가 쉴 새 없이 찬양을 부르는 가수와 연주자, 청중을 교대로 포착하는 방식을 활용해 촬영됐다. 어느 인물도 2~3초 이상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이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간과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예배적 체험을 경험할 것이다. 이전의 찬양팀들이 음반과 교회 집회로 영향력을 넓혔다면, 위러브는 SNS와 영상으로 가상 예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준 것이다.

“당신은 시간을 뚫고 이 땅 가운데 오셨네… 하나님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네. 꿈 없는 우리에게 그 나라 보여주시네.” 이들의 대표곡 ‘시간을 뚫고’의 가사 일부다. 이 시대 젊은이의 고민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청년의 정서를 짚어낸 가사와 신선한 교리적 표현도 지금 젊은 세대들이 위러브에 열광하는 또 다른 요인일 것이다. 나는 늘 새로운 실험과 시도가 반갑다. 위러브뿐 아니라 참신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기독 청년의 문화 운동을 기대하며 응원해 본다.

윤영훈(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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