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조국 장관’… 文대통령이 잃게 될 두 가지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조국 장관’… 文대통령이 잃게 될 두 가지

입력 2019-09-06 04:01

유명환 딸, 최순실 딸, 조국 딸 반복돼온 기득권 대물림 파문
文정부 내세운 공정의 가치가 정권 핵심인사 통해 흔들렸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할 기회 검찰에 제공한 조 후보자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 거꾸로 위축시킨 역설적 상황


“불법은 없었다.” 이 말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조국 사태의 뇌관은 이 짧은 문장에 숨어 있었다. 그는 의혹이 나올 때마다 일관되게 불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웅동학원과 사모펀드를 그렇게 대응하더니 딸의 입시도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했다. 지금이야 검찰이 불법을 찾아 나섰지만, 전격적인 압수수색 이전에는 사람들이 법학자인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말을 배척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법을 지켰다는 주장. 이것이 역풍을 부르며 사태를 증폭시켰다. 처음부터 불법이 명확했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 법과 제도는 문제가 없는 거니까. 내가 속한 시스템에 오류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피해를 입었던 상황은 아닐 테니까.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은 조 후보자 딸이 논문 저자가 된 것보다 훨씬 노골적인 수법이지만 사람들이 지금처럼 화를 내진 않았다. 법을 어겼으니 처벌하면 되고, 부당한 이익을 회수하면 되고, 교사 자녀 학사관리를 강화하는 선에서 제도의 허점을 메우면 되는 거였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딸을 KT에 취업시킨 사건은 실정법에 위배되는 권력형 부정청탁이고 검찰이 기소까지 했는데 국민적 분노가 표출되진 않았다. 대대적 채용비리 수사의 끝물에 나온 터라 국회의원도 처벌할 만큼 제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며 사람들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을 수 있다.

“불법은 없었다”는 해명은 ‘조국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렸다. “법을 지켰으면 됐지”라는 수긍 대신 “법을 어기지 않고도 이런 게 가능해?” 하는 더 본질적인 의구심이 표출됐다. 이런 게 불법이 아니면 법이 잘못된 것이다, 게임의 룰에 따라 그리 됐다면 그 룰이 잘못돼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조국 의혹은 이렇게 비리의 영역을 넘어 공정(公正)의 문제로 전환됐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가 애용하는 ‘종합병원 접수 번호표’ 사례는 공정에 균열이 생길 때 나타나는 폭발력을 설명해준다. “접수 차례를 알려주는 번호표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직원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접수대로 몰려갔습니다. 내가 못 듣거나 직원이 순서를 착각하면 억울해지니까. 평소 1시간씩 말없이 기다리던 시민의식이 갑자기 낮아진 걸까요? 번호표는 공정을 보장해주는 제도입니다. 공정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사람들은 1시간도 기다리지만 그게 없을 때는 1분도 못 견딥니다.”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이 1분도 못 견디는 불공정의 파장을 우리는 정권마다 경험했다. 이명박정부에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외교부 5급 특채에 합격한 사실이 밝혀졌다. 딱 1명을 뽑는 데 장관 딸이 뽑혔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쳤고 유 장관은 옷을 벗었다. 박근혜정부에선 최순실씨의 딸이 교수들의 비호 속에서 대학에 입학해 특혜를 받은 것이 드러났다. 국정농단 사태에 기름을 부었고 정권은 문을 닫았다. 조국 사태는 공교롭게 이런 불공정 사건의 연장선에 놓였다. 기득권의 대물림이라는 성격이 같고, 그것도 한국인의 공정 감수성이 한껏 예민해진 시점에 폭발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를 외친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가치가 정권의 핵심이란 사람을 통해 흔들리고 있는 상황. 내가 본 조국 사태 ‘전반전’의 결론은 그렇다.

후반전 들어서는 검찰 수사 속도가 빨라졌다. 조 후보자는 “몰랐다”고 거리를 두며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당은 지원사격하듯 검찰을 공격하고 있다. 여권의 조국 사수 명분은 명확하다. 검찰개혁에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왜 하는 것인가.

검찰이 권력에 휘둘려 왔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한없이 약해서 그 입맛에 맞게 칼을 사용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가 그랬고, 박근혜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수사가 그랬다. 권력에 반기를 들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문재인정부가 발탁한 것도 이런 폐단을 막자는 뜻이었다. 그런 검찰이 지금 조국 의혹을 수사한다. 살아 있는 권력이고 대표적인 실세를 향해 칼을 들이댔다. 검찰이 권력에 휘둘려온 탓에 검찰개혁을 하려는데, 외형상 굳이 안 해도 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오히려 검찰이 말을 안 듣는다며 여권이 투덜대는 상황으로 비친다.

물론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수사로 비대한 검찰권의 폐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적임자란 인물이 개혁의 당위성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동양대 표창과 KIST 인턴 문제 등 비리에 근접한 정황까지 보인다. 수사가 진전될수록 검찰개혁의 명분은 훼손될 테고, 그만큼 개혁의 동력이 떨어져 갈 것이다.

국정 전면에 내세운 공정이란 가치의 훼손. 검찰개혁 명분과 동력의 훼손. 이 두 가지를 감수하면서 조 후보자를 법무장관에 앉혀야 할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국 카드를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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