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계안] 정부가 나설 일, 시장에 맡길 일

국민일보

[경제시평-이계안] 정부가 나설 일, 시장에 맡길 일

입력 2019-09-10 04:04

‘단기에 정부 이기는 시장 없고, 장기에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유명한 격언이다. 어느 정부건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하는 정부는 없는 것 같다. 박근혜정부는 부양책으로 일관하더니 문재인정부는 억제책으로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부터 보자.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시기는 유럽 재정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끝도 없는 침체의 나락에 빠져 있었다.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때 정부는 부양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취득세, 등록세 감면부터 온갖 규제완화 대책이 나왔다. 이런 대책들은 일견 약발이 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시장 하락세를 조금 돌려놓는 ‘단기’ 효과만 있었고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정작 시장을 되돌린 것은 유럽 재정위기의 마무리와 세계 경기의 호황국면 진입이었다. 정부가 내놨던 각종 부양책들은 장기 저금리 상황과 맞물려 버블만 초래했을 뿐이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와 서울 강남 부동산 시장 간의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불씨를 지핀 것은 강남 부동산 시장이었다. 지난 노무현정부의 억제책이 집값을 더 올려놨다는 경험칙이 작동하면서 강남 집값이 꿈틀거렸다. 물론 정부는 예상했던 대로 억제 정책으로 일관했다. 문재인정부 첫 대책이며 청약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소위 ‘핀셋’ 규제인 2017년 6·19 대책을 내놨고, 두 달도 채 안돼 세제, 금융, 청약,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들이 총망라된 초고강도 8·2 종합 부동산 규제 대책을 내놨다. 시장은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듯했지만 또 다시 질주를 시작했고. 1년여 만인 2018년 9월 13일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겨냥한 9·13 대책과 함께 12월에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미 오래전 수많은 시장왜곡 때문에 폐지시켰던 분양가상한제를 들고 나왔다.

문재인정부의 바람대로 강남 부동산 시장이 잡힐까? 장기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쳐나는데 집값이 잡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 등 커다란 악재들과 함께 찾아온 경기 침체마저 강남 진입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 강남에는 5년 전 시장 진입에 실패한 사람들이 현금 싸들고 호시탐탐 진입 기회만 엿보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내놨던 억제책들은 집값 안정 효과는커녕 지방 경기를 극도의 침체로 몰아넣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부양책이 시장 회복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무관하게 버블만 초래했던 것처럼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억제책이 침체에 빠진 지역경제와 맞물려 중산층의 붕괴와 서민층의 고통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사상 최대의 수출과 경기 회복의 혜택은 서울과 일부 수도권에만 집중되었다. 주로 IT산업과 관련된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IT 호황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구조조정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영호남권 지역경제는 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겹치면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그나마 IT 관련 제조업이 몰려 있어 경기가 좋았던 필자의 고향인 경기도 평택도 예외는 아니다. 평택 부동산 시장 역시 사경을 헤매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의 방향성을 새로 잡아야 한다. 경기마저 하강 국면으로 진입한 지금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상황 진단을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정부는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민간 시장은 민간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서민층 및 그 이하 계층에 대한 주거복지 정책에 치중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LH가 환매조건부 주택 제도를 도입한 것은 크게 고무적인 일이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필자가 제17대 국회의원이던 시절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며 처음 선보였던 정책으로 서민층에 대한 주거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쪼록 정부는 시장기능 활성화와 주거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잡힌 정책을 하루빨리 내놓기 바란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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