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미국 3개 지역 밀알이 ‘한 몸’으로 새 출발

국민일보

[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미국 3개 지역 밀알이 ‘한 몸’으로 새 출발

<19> 미주밀알선교단 출범

입력 2019-09-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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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앞줄 오른쪽 여섯 번째)가 1995년 8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 밀알지도자 모임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밀알연합 제공

미주밀알선교단이 출범하던 역사적인 그날은 1992년 6월 8일 월요일이었다. 봄의 마지막 자락에 놓인 미 동부의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했다. 마치 우리의 뜻깊은 또 하나의 출발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 DC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수님이 기도드렸던 동산의 이름을 딴 겟세마네기도원이 있었다. 미주밀알의 역사적인 출범식은 바로 그곳에서 거행됐다.

필라델피아 워싱턴 LA 세 곳에 세워진 밀알이 드디어 법적으로 하나 되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명실공히 ‘하나의 밀알’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설립자 설립목적 설립정신이 같았으면서도 그동안은 법적인 관계가 없는 개체로 있다가 미주밀알선교단이라는 우산 아래 한 몸이 된 것이다. 함께 협력해 미주 전역에 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펼치는 것은 물론 애초에 하나님께서 밀알을 통해 계획하셨던 대로 세계장애인 선교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출발이기도 했다.

준비를 위해 하루 전인 7일 오후 나는 뉴저지 집을 나서서 겟세마네기도원으로 향했다. 중간에 필라델피아에 들러 필라델피아밀알 손갑원 총무와 함께 갔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다섯 시간 내내 나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했다. 솔직히 이 열매를 위해 미국에 왔지만 실제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약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처음에 미국에 도착해서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거짓말처럼 그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자존심처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불씨로만 간직해 왔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가끔 한 번씩 끄집어내어 자신 없는 몸짓으로 내보였을 뿐이었다. 아마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라면 그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의 어설픈 신념과 부족한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고야 만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감사할 뿐이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얼굴을 돌려도 감격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1년 전 10월 박사과정 자격시험 통과 이후 반년 동안이나 고심하며 준비해 오던 박사논문 프로포절(Proposal)을 하나님께서는 바로 미주밀알선교단 출범 나흘 전에 마치게 하셨다. 수많은 고비를 다 넘어 이젠 정말 논문 집필만 남았다. 그래서 미주밀알 출범을 위해 겟세마네로 달리는 마음과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공부도 미국에 온 또 하나의 목표였는데 두 가지가 하모니를 이루듯 기적처럼 이뤄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내 인생 속에서 과연 하나님의 기적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욕 밀알 사무실 외부모습. 세계밀알연합 제공

미주밀알선교단 출범 대회는 8일부터 1박 2일간 진행됐다. 하루 전인 7일 저녁에 여러 사람이 미리 모여 기도회를 갖는 등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실상은 2박 3일이었다. 공식 행사는 8일 오전 11시 개회예배로 시작했다. 워싱턴밀알 강원호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예배는 필라델피아밀알 정승원 전도사가 특별 찬양을 하고 워싱턴밀알 이사장 윤정태 목사님이 설교를 했다. 오후부터는 내가 진행을 했는데 참석자의 소개에 이어 미주밀알선교단 정관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출했다. 공식적으로 내가 초대단장이 되고 강 목사가 총무국장을 맡았다. 특강과 간증시간으로 채워진 저녁에는 김명희 자매가 특수교육에 대해, 내가 장애인 선교와 밀알의 비전에 대해 강의했다.

둘째 날은 오전 7시에 모여 아침 예배로 시작했다. 필라델피아밀알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스태프들이 기도와 설교를 맡았다. 예배 후 오전 시간에는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 워싱턴밀알 소속 민성기 형제가 ‘휠체어 다루는 법’을 소개하고 뉴욕에서 온 전근희 집사가 시각장애인 안내법을 강의했다. 모든 참석자가 둘씩 짝을 지어 밖으로 나가 교대로 눈을 가리고 장애 체험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오후에 드린 폐회예배는 워싱턴밀알의 우헌제 목사가 사회로, LA에서 온 장광우 목사가 설교자로 수고해줬다. 역사에 남을 현장에 참석한 총인원은 48명이었다. LA에서 3인, 필라델피아에서 5인, 뉴욕에서 2인, 뉴저지에서 4인, 코네티컷에서 1인, 그리고 나머지는 워싱턴밀알에서 참석했다.

처음 미주밀알선교단은 지역의 구분 없이 전체를 포괄하는 연합대표기구 형식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곧 일의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 달 후 워싱턴밀알선교단이 미주밀알 본부로 활동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8월에 사무실을 개설했고 정식으로 미연방정부에 법인단체 승인을 받았다.

첫 사무실을 마련하는 데는 출범하던 날 후원단원이 된 워싱턴밀알 윤덕영 집사님의 도움이 컸다. 윤 집사는 매월 300달러씩 후원을 하다가 얼마 후 액수를 매월 600달러로 늘려 수년 동안 밀알선교단 운영에 큰 동력이 돼줬다.

감사하게도 그는 당시 미주밀알이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밀알을 믿고 조건 없이 도움을 줬다. 유명 단체를 지속해서 돕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제대로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단체를 위해 도움을 준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미주밀알이 토대를 닦는 데 있어 부족했던 부분들을 그렇게 작은 기적들로 채워 걸음을 딛게 하셨다.

이재서 박사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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