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형 성범죄에 경종 울린 안희정 사건 대법원 판결

국민일보

[사설] 권력형 성범죄에 경종 울린 안희정 사건 대법원 판결

입력 2019-09-10 04:03
대법원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1심은 무죄, 항소심은 징역형에 법정 구속으로 판단이 달랐는데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위력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항소심에서 강조한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은 권력형 성범죄를 판단하는 새로운 흐름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폭력 사건 심리 때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 심리적 상태, 피고인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지난해 4월 대법원의 다른 사건 판결에서 처음 제시됐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 김모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에 걸쳐 강제추행이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을 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위력은 존재하지만 행사하지 않았고, 성관계 후에도 김씨가 안 전 지사와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고 비서 업무를 수행했다는 등의 이유로 김씨의 진술에 의문점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김씨가 지방 별정직 공무원이란 신분상 특징과 비서라는 관계로 인해 안 전 지사의 지시에 순종해야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을 고려 안한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건 정의와 형평 이념에 따라 논리와 경험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성범죄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피해를 당한 뒤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피해 사실을 신고한 후 그에 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해 왔지만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가해자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판결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성범죄라는 인식을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모든 간음을 처벌할 수 있도록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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