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극 대가 임도완이 그린 유쾌한 몰리에르

국민일보

신체극 대가 임도완이 그린 유쾌한 몰리에르

연극 ‘스카팽’

입력 2019-09-11 04:07
몰리에르의 작품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연극 ‘스카팽’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막이 오르면 17세기 프랑스 희극의 거장 몰리에르가 무대에 오른다. 그가 “프랑스 코미디는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울랄라! 여러분의 생각을 바꿔줄 작품을 소개합니다”라고 운을 떼자 유랑 극단을 닮은 인물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이 작품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스카팽’(원작 ‘스카팽의 간계’). 곧 화자의 말이 과장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대사는 귀에 착 감기고 배우들의 몸짓은 눈을 간지럽힌다. 무엇보다 우스꽝스러운데 곱씹을수록 진하게 배어 나오는 여운이 있다.

사실 전형적인 통속극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막장극’. 정략결혼을 꿈꾸던 재벌 아르강뜨와 제롱뜨의 아들들은 하류층 여인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이별의 위기 속 부모의 계획을 막으려 꾀돌이 하인 스카팽에게 도움을 받는데 이게 웬걸, 여인들이 상류층의 자제였다는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며 극은 별안간 해피엔딩으로 치닫는다.

그렇다면 언뜻 허술해 보이는 이런 극이, 300여년 전 지구 반대편 극장에 올랐던 단출한 극이 새삼 놀라운 감각을 선사하는 이유는 뭘까. 현시대와 호흡하는 극으로 재탄생시킨 각색의 힘이 크다.

극은 하인 스카팽이 계급을 전복하며 상류층을 조롱하는 원작 스토리텔링에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사회 현안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간단없이 이어지는데, ‘땅콩 회항’ ‘유니클로’부터 돈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세태에 대한 조소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사모님 아르강뜨가 소리 지를 땐 ‘갑질’로 물의를 빚은 재벌 일가의 녹취 음성이 깔린다.

작가 몰리에르가 무대에 직접 등장하는 형태의 각색도 눈여겨볼 법하다. 극중극 형식을 통해 관객과 극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넓힌다. 임도완 연출가는 “거리 두기를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새로운 리듬이 들어온다”며 “그런 느닷없음이 코미디에서는 유쾌한 웃음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신체극의 대가인 임 연출가가 조형한 독특한 몸짓과 김요찬 음악감독의 라이브 연주가 함께 빚어내는 하모니가 다소 복잡한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게 돕는다. 젬베, 카혼, 레인스틱 등 이채로운 악기 리듬에 맞춘 배우들의 팬터마임이 내내 시선을 단단히 붙든다.

극 후반 몰리에르는 “이거 너무 막장 아니야?”라는 등장인물의 물음에 “인생은 어차피 우연의 연속이야”라며 호통을 친다. 삐거덕거리면서도 끝까지 흘러가는 극을 보고 있으면 한바탕 웃다가 삶을 괜스레 관조하게 된다. ‘수전노’ ‘타르튀프’ ‘상상병 환자’ 등을 남긴 프랑스 최고의 희극작가 몰리에르. 그는 웃음을 삶을 교화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여겼다고 한다. 러닝타임은 115분, 공연은 29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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