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해남서 태양광 허가 못 받으면 바보” 수천건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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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 “해남서 태양광 허가 못 받으면 바보” 수천건 ‘시한폭탄’

[태양광 갈등 현장 르포 上] 정부 헛발질에 몸살 앓는 전남

입력 2019-09-16 04:05
전남 고흥군 포두면 남성리에 있는 야산 일부가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위해 벌목돼 있다. 지난 5월 귀촌한 마을 주민 박승주(왼쪽)씨와 방기호 이장이 지난 7일 허옇게 드러난 산허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고흥=김판 기자

전남 해남군 북평면 달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산마마을은 마을회관 주변에 주택 30여채가 모여 있는 작은 시골 공동체다. 60, 70대 노인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선 최근 소송 문제로 내홍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밭을 갈아엎고 태양광 발전 공사가 시작된 게 발단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똘똘 뭉쳐 집회·시위를 가졌고, 군청에 항의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전라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까지 내 봤지만 최근 기각 결정을 받은 뒤로 갈등이 커졌다. 마을은 소송을 걸어 막아보자는 쪽과 어차피 지어질 텐데 보상금이라도 받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13호 태풍 ‘링링’이 강타한 지난 7일 만난 이길석(61) 산마태양광건설반대추진위원장은 “마을이 뒤숭숭하다. 매일 주민들에게 재판받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7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산마마을 주변 태양광 발전소는 패널 면적 2만2000㎡, 설비발전 용량 2100㎾에 달한다. 마을 주민들이 경작하는 밭과 맞닿아 있었다. 발전소 부지 사방을 길게 이어 판 배수로에는 토사를 머금은 빗물이 고여 있었고, 패널 아래 지면에도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이 위원장은 “저런 발전소가 달마산 앞뒤로 10개 더 들어온다는데, 이 아름다운 달마고도에 어쩌자고 태양광 발전소 허가를 그렇게 내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관광객이 태양광 패널을 보러 마을을 찾고, 그런 마을에서 기른 작물을 사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귀향한 문모(65·여)씨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발전소에서 내려오는 황톳물이 주변 집과 밭까지 넘쳐흐른다. 이렇게 가깝게 발전소가 들어서는 줄 알았으면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이번 태풍에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라 주변을 몇 번씩 오갔다고 한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남성리 역시 태양광 발전 사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발전소 부지인 야산에서 벌목작업이 시작됐다. 3만여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면서 벌거벗은 산허리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지난달 말 폭우가 내렸을 때 벌목된 산에서 토사가 밀려와 주민들이 곤란을 겪었다. 마을 주민 나정순(64·여)씨는 “태풍이 오거나 비가 내릴 때마다 산이 무너질까 걱정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머리 위에 태양광 발전소를 이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산마마을과 남성리의 태양광 발전소는 현재 기준대로라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나 해당 지역 사업자들은 정부가 지자체에 발전소 허가를 위한 기준 완화를 종용했던 2017년 사업에 뛰어들어 제재를 받지 않았다. 전남지역 대부분 지자체에는 이런 방식으로 남발된 허가가 수백~수천건씩 쌓여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태양광 발전 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남의 각 지자체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갈등은 시작도 안 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산비탈이나 마을 인근에 허가받은 태양광 발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삽도 뜨지 않은 곳이 많아 갈등이 시한폭탄 같다는 것이다.

전남 해남군 달마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태양광 발전소(패널 면적 2만2000㎡) 배수로에 토사를 머금은 빗물이 고여 있다. 태양광 패널 아래쪽에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파여 있다. 발전소 아래 산마마을 주민들은 폭우 시 황톳물이 인근 주택이나 논밭으로 범람할 수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해남=정현수 기자

실제 해남군만 해도 지난 9일 기준으로 총 2478건(1387㎿)의 발전 허가가 누적돼 있다. 이 중 발전시설 공사가 완료돼 실제 가동 중인 발전소는 566건(128㎿)에 불과하다. 발전 용량으로 따져보면 허가 대비 가동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나머지 대부분 사업장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다른 곳으로 전달할 전력계통 연계 공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발전 허가는 받았지만 개발 허가를 받지 못했거나 주민 반발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사업장도 있다. 해남군 관계자는 “지금도 마을마다 태양광 사업 때문에 갈등이 심한데, 전력계통 연계가 이뤄지고 태양광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흥군도 마찬가지다. 군에서 내준 태양광 발전 허가 건수는 3017건(777㎿)에 달하는데, 시설을 갖추고 가동하는 발전소는 839건(112㎿)밖에 되지 않는다. 고흥군 관계자는 “기존에 내줬던 발전 허가들이 시한폭탄이 돼 버렸다. 이미 내준 허가를 무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전남 지역 22개 시·군에서 나간 발전 허가는 2만5417건(8052㎿·2018년 말 기준)인데, 가동 중인 발전소는 6624곳(1518㎿)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지어진 사업장의 약 3배에 달하는 사업장이 수년 내 신규로 들어선다는 얘기다.

혼란은 정부가 자초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3월 태양광 발전소 허가와 관련해 ‘이격거리 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거나 100m 이내로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각 지자체에 내렸다. 2016년 10월에는 발전 용량 1㎿ 이하 소규모 태양광 사업은 전력계통이 갖춰지지 않더라도 허가를 내주라고 가이드라인까지 줬다.

지자체는 압박을 느끼며 허가를 남발했다. 2017년 2월 6일 해남군의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태양광 발전 사업 허가 남발을 지적하자 군청 관계자는 “지금 있는 규제마저 중앙정부에서는 과도한 규제라고 완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심지어 감사원에서는 그런 과도한 규제를 하는 지자체에는 어떤 식으로라도 불이익을 줄 거라고 하고 있다. 실무진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 사이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이 몰려들었다. 2016년 163건이던 해남군의 태양광 발전 허가 건수는 2017년 772건, 2018년 848건으로 급증했다. 이길석 위원장은 “2017년 전까지만 해도 발전소를 지으려면 주민들의 동의를 받았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태양광 발전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군청이 그 관행을 없애버렸고, 태양광 사업자들이 해남으로 우후죽순 몰려왔다”며 “해남에서 발전소 허가를 못 받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허가받은 발전소가 들어서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군은 2017년 4월 태양광 발전소 개발 행위에 대한 규제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무안군이 2017년 8월 민가로부터의 500m 이격거리 규제를 없애자 이후 발전사업 허가 신청이 물밀듯 쏟아졌다. 지난해 4월 이격거리 규제를 되살릴 때까지 태양광 발전 사업 허가 신청 건수는 1400건까지 폭증했다. 전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규제를 완화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다보니 지난해 초 산자부는 ‘여건에 맞게 개발 행위 제한을 적용하라’고 다시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뒤늦게 규제를 강화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규제가 강화되기 전 발급된 태양광 발전 허가는 손댈 수 없는 실정이다. 고흥군의 사례를 보면 규제가 강화된 이후인 2018년 1월 이후부터 지난 9일까지 나간 발전 허가는 400건 수준이다. 반면 2018년 이전까지 나간 발전 허가는 무려 2600건에 달한다. 고흥군 관계자는 “규제를 소급 적용할 수 없으니 문제는 여전히 안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순문 전남도의회 의원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맞지만 지역마다 처한 여건 등을 신중히 고려해 가면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지자체가 지금까지 이런 고려 없이 사업을 너무 중구난방으로 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허가받은 그 많은 태양광 발전소가 다 지어진다 해도 전력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주민 갈등이나 환경 훼손 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할건지 먼저 고민하고 사업을 시작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속도를 늦추고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남=정현수 기자, 고흥=김판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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