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승욱] 3차 조국대전 상대는 누굴까

국민일보

[돋을새김-고승욱] 3차 조국대전 상대는 누굴까

입력 2019-09-17 04:01

‘2차 조국대전’이 한창이다.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1차 대전과 달리 2차 대전은 권력의 정점에 선 두 사람의 진검승부라는 게 특징이다. 베지 않으면 베이는 치명적인 싸움이니 어설픈 도움은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환호하거나 야유하는 여론은 필요에 따라 동원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데 정작 싸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 결과는 모른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거나, 둘이 절묘하게 타협하거나, 공멸할 것이라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할 뿐이다.

이들의 싸움은 대나무숲에서 칼을 들고 날아다니는 무협영화처럼 비현실적이다. 스스로를 만신창이라고 부른 조국 법무장관은 검찰 개혁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부인은 검찰 조사 직전이고, 조카는 체포돼 법원에 구속영장이 들어갔다. 본인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검찰개혁마저 실패한다면 추락한 명예를 딛고 일어설 발판조차 사라진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정치하겠다고 덤빈’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마땅한 퇴로는 보이지 않는다. 적폐를 쓸어버린 장수가 어느 날 갑자기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자의 수괴가 됐다. 멈출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 타협하려 해도 뒤에 특검이 기다린다. 장삼이사들은 누구를 응원하는 게 옳은지를 놓고 다툰다.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 이런 싸움 자체가 잘못됐음을 알고 있다. 그러고는 묻는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책임을 묻기 전에 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어이없는 상황이 됐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곧 정의와 공정 문제가 떠올랐다. 사회정의를 외쳤던 지식인의 위선과 내로남불의 구차함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기회의 공정을 앞세워 집권한 정부에 실망감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조 장관이 문재인정부의 가치를 훼손한 게 아니라는 변론이 쏟아졌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면책특권 뒤에 숨어 무차별 살포하는 야당과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쓰는 언론이 비난을 받았다. 상식적인 의심조차 어느 편이 말하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막연한 의혹 중 몇 가지가 사실로 확인되자 조 장관은 반성과 성찰을 말했고, SNS에는 그때는 모두 그랬다는 반론이 퍼졌다. 그러고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조 장관을 임명했다. 여기까지가 ‘1차 조국대전’이다.

승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장을 받은 조 장관이다. 승리의 이유는 정의·공정 대신 검찰 개혁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무리수를 뒀다. 학생운동의 가치를 평생 지니고 살았던 지식인은 촛불을 든 학생들을 기득권자로 비난했다. 존경받던 교육자는 학술논문과 입시용 에세이는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여당 대변인은 매일 만나는 기자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정치권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SNS는 자신이 제시한 가치를 부정하는 글로 가득 찼다. 팩트에 엄정했던 기자가 간단한 사실관계조차 틀린 글을 읽어볼 만하다며 공유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냥 “문 대통령을 지지하니 괜찮다”고 했으면 그만이었다.

고수들의 싸움은 대나무숲 안에서 끝나야 한다. 검찰을 개혁한다며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한다. 피의사실공표금지가 대표적이다. 여러 폐단이 드러나 고쳐야 할 과제지만 온갖 의심을 받으며 급히 추진할 일은 아니다. 입을 틀어막는 게 원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소외된 젊은 층을 만나 대화하는 것은 좋지만 사다리까지 준비해 사진 찍고, 여기저기 돌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동안 장삼이사는 흥분해 쏟아낸 말을 어떻게든 주워 담았으면 좋겠다. 법무부와 검찰이 각자의 일을 하면 된다니, 기다릴 일이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점은 3차 조국대전이 혹시 사법부를 상대로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기세라면 못할 것도 없어 보여 그렇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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