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우리 집 식탁이 천국이라면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우리 집 식탁이 천국이라면

입력 2019-09-17 04:06 수정 2019-09-17 17:26

군복무 중일 때 진중문고에서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자그마한 문고판이어서 부담 없이 읽긴 했지만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어떤 기독신자가 세상 멸망 직전 자신의 죄를 깨닫고 구원받아 천국(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이야기. 영국 근대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지명도가 높아 선뜻 손에 잡긴 했지만 내게 의미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지 못한 셈이다. 20대 초반 그 무렵이면 교회 문 앞에도 가본 적이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천국은 ‘예수쟁이’들조차 그 존재를 진심으로 믿지 않을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을 때였다.

사실 천국은 종교적 의미만을 가진 낱말이 아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지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된다. 기독교적 낙원이나 에덴동산만을 뜻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일반적으로 천국은 하늘, 또는 그 이상으로 끝없이 넓게 확장되는 천상의 영역을 의미한다. 여러 종교나 영적 철학에 등장하는 말로서 신성, 선량, 신앙심 등의 기준에 만족한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가장 거룩한 곳을 뜻하기도 한다(위키백과).

온통 유교문화에 젖어 있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아주 익숙하게 사용됐다. 시골의 뿌리 깊은 불교문화 때문인 듯 천국보다는 천당이란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긴 했다. 실제 불교에는 극락이라 불리는 천국, 혹은 천당 개념이 있다. 아미타불이 거주하며 설법하는 불교 신자들의 이상향을 가리킨다. 죽은 뒤에 가고자 하는 복된 세계 가운데 하나로, 심신의 괴로움은 없고 오직 즐거움만 있다고 한다.

이슬람교에도 당연히 천국이 있다. 이 세상에서 선행을 베푼 사람, 성전(지하드) 순교자 등이 그 보답으로 살도록 허락된 천상의 낙원을 가리킨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샘 주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미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코란에 묘사돼 있다. 종교마다 천국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그 본래 의미는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영원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방법은 제각각일지라도 최종 목표는 사실상 같다고 하면 틀린 말일까.

그 답이 무엇이든 아무래도 천국은 기독교문화권에서 가장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성경 곳곳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라이프성경사전은 천국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 공간적으로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는 정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는 역동적인 힘이다. 어느 곳 어느 때라도 하나님이 그 권세와 능력으로 통치하시면 그곳이 하늘나라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는 권리와 책임을 가지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완성된 미래의 영원한 천국을 확신하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들었음일까. 요즘 대화 중에 천국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천국이란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천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언젠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자선을 기준으로 할 경우 죽은 이의 50% 정도가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10%나 20%만 갈 수 있다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고, 더 겸손해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소설가 미치 앨봄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세종서적)을 통해 전하는 용서와 화해의 실천도 참으로 중요할 듯하다.

삶이 많이 남았음일까. 죽어서 가는 천국보다 ‘현세 천국’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고 문동환 목사의 현세 천국론은 탁월하다. 그는 저서 ‘예수냐 바울이냐’(삼인)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누가복음 10: 29-37) 뒤풀이를 통해 천국의 현재성을 명징하게 설명한다. 성경에는 그 시대 천시받던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나 다친 사람을 치료한 뒤 돈까지 주며 여관에 맡기고 떠난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하지만 문 목사는 그 이후를 상상해보길 권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이틀 뒤 강도 만난 사람은 자기를 도와준 사마리아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동구에 나가 서성인다. 저녁 무렵 그가 나귀를 타고 달려온다. 두 사람이 반갑게 포옹하며 인사한다. ‘아이고 많이 나으셨네요. 이제 걷게 되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예 모두 선생님 도움 덕분이이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며 거듭 인사한다. 이때 여관 주인이 저녁을 준비했다며 들어오라고 한다.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면서 맛있는 식사를 한다. 감격에 찬 이 만남이 바로 천국이다.”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이 부분을 읽다 주방쪽 식탁을 쳐다보았다. 저곳이 천국이란 말인가. 우리 집에선 일주일에 휴일 아침 한두 번만 전체 다섯 식구가 모여 식사한다. 평일에는 모두 바빠 아침, 저녁 식사시간이 다 다르다. 그래서 휴일만이라도 웬만하면 약간 늦은 시각 아침을 함께 먹는다. 맛있는 ‘집밥’에다 과일과 커피까지 먹고 마시며 얘기꽃을 피운다. 직장 얘기, 친구 근황, 여행 계획 등 갖가지 화제로 웃고 떠들다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나는 이 식탁을 감히 천국이라 명명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식탁에 모이란 말을 농담 삼아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한다. 어찌 우리 집 식탁만 천국이랴. 어느 집이든 사랑이 넘친다면 저녁시간 모여 앉는 거실도 천국, 기쁜 소식 전하는 가족 단체 카톡방도 천국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도 크고 작은 천국을 건설할 수 있을 텐데….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