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박상익] 동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국민일보

[청사초롱-박상익] 동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입력 2019-09-18 04:05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으로 양분되어 서로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며 으르렁거렸다. 어느 것에도 구속받기를 거부한 세계시민 에라스무스(1466~1536)는 이념 갈등이 극단적으로 증폭되던 시기에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에게 국가는 무의미했다. 그는 교육과 정신의 귀족으로 이루어진 상위 세계와 천박과 야만이라는 하위 세계, 두 세계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중립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그의 명분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자유와 관용을 주장한 그의 믿음마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은 국경, 종교, 언어를 초월해 유럽 전역을 다니며 학문을 연마했던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1987년 만들었다. EU 회원국 대학생들은 재학기간 중 1∼2학기를 다른 유럽 국가 대학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EU 회원국이 아닌 나라까지 포함해 31개국 4000개 대학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누려온 이 프로그램은 EU의 실질적인 통합에 가장 기여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2012년에만 총 25만2000여명의 학생 및 교수 교류가 이루어졌다. 2014년부터는 ‘에라스무스 플러스 이동성 계획(Erasmus+Mobility Scheme)’이 추가되었는데, 이 계획으로 2014년부터 2020년 사이에 약 25만명의 영국 학생들이 EU 역내 국가들에서 유학, 연수, 취업 기회를 갖게 된다.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젊은이들이 모여 수개월 동안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개별국가의 국민이 아닌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이 젊은이들은 ‘에라스무스 세대’라고 불린다. 통합 유럽의 주인공들이다.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다. 2009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한·중·일 현안 해소를 위한 대학생 교류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한·중·일 3국은 ‘동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2011년 10월 일본 도쿄대에서 ‘제12회 베세토하 총장포럼’이 열렸다. 서울대, 베이징대, 도쿄대, 하노이대 총장들이 모여, ‘베이징, 서울, 도쿄, 하노이’를 뜻하는 ‘베세토하(BESETOHA)’ 도시의 대표 대학들이 공동학위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공동학위제는 각 대학의 학위 취득 요건을 충족한 학생에게 공동명의의 학위를 주는 것으로 졸업장에 각 대학 총장의 직인이 모두 찍힌다.

공동학위제로 ‘동아시아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탄생해 동아시아 지역의 학생 교류가 정착될 희망이 차올랐다. 젊은이들의 상호교류를 통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닌 ‘동아시아인’의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보였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공동학위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읽을 수 없다. 2018년 베세토 페스티벌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렸지만, 이 페스티벌은 아시아 문화예술의 교류와 확장을 목표로 한 연극제 행사였다. 처음 취지에서 크게 퇴색한 모습이다. 편견 없는 자유사상가, 초국가적 세계주의의 최고 상징인 에라스무스의 정신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류에 잘 부합한다. 교육과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젊은이들이 궁극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는 열정을 내면화하도록 해야 한다.

한·일 간 역사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필자는 언젠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함께 양국 관계가 정상화 될 것으로 믿는다. 반드시 그리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과 지식인은 눈앞의 비근한 현실을 뛰어넘어,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동아시아의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일본 불매운동, 소재부품개발과 나란히 이 일도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가 동아시아 평화의 리더로 우뚝 서지 말란 법이 어디에 있는가.

박상익(우석대 초빙교수·역사교육과)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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