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창호] 조국,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국민일보

[데스크시각-신창호] 조국,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입력 2019-09-18 04:05

시인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란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아버지가 떠올랐다. 1986년 대학 2학년 때다. 4·19세대로 샐러리맨을 거쳐 사업가가 되고, 성공하자 골프를 치고 편안한 강남생활에 만족하시던 아버지. 대학동창 모임에 갔다가 새카맣게 4·19 정신을 잊어버린 친구들에게 절망한 주인공의 냉소가 담긴 이 시를 아버지에게 정조준했었다. 80년대 중반 전두환 독재 시절을 통과하던 그때 나뿐 아니라 다수의 청춘이 운동권으로 살았다. 거리시위와 반미, 반독재, 좌파 서적과 혁명이란 단어가 매일의 일상을 채웠다.

88년 4학년 2학기 우리들은 학교 앞 선술집에 앉아 또 이 시를 읊조리며, 졸업해서도 시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한심하게 살지 말자” “결코 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생계에 목숨을 걸면서 시간은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렇게도 변하고 싶지 않던 삶은 완전히 변했다. 그때 이해하게 됐다. 시의 등장인물들이 ‘진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고 처자식 안부를 묻고 월급과 재테크를 논하며 좀 더 잘살아 보려고 버둥대는 게 삶이란 생각을 굳혔다.

운동권 시절을 같이 보낸 대학동창들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누구는 위장취업을 했다 해고노동자가 돼 있었고, 누구는 결혼했다 이혼한 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으며, 누구는 잘나가는 대학의 교수가 돼 있었다. 또 누구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다른 누구는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비서관, 어떤 선배는 여당 국회의원이 돼 있었고, 나머지의 다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0년대 초반 탄생한 조어(造語)의 주인공 ‘386세대’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도 부끄럼 하나 없이 실컷 웃었다. 그냥 주어진 삶의 몫을 살면 그뿐이라 여겼다. 그렇게 말한 기억도 난다. “내 인생조차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는데 무슨 세상을 뒤바꾸고 다른 사람들 생각을 다 바꿔놓겠느냐.” 몇몇 친구들이 흘겨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 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사는 게 바빴다는 핑계라기보다는 시의 효용성이 다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줄도 빠짐없이 외웠던 구절구절은커녕 시 제목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문재인정부의 제2대 법무부 장관 조국씨가 한창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요즘,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났다. 가족과 자신의 이중적 처세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의 삶은 열광의 대상이었다.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세상의 개혁을 외치고 실천하는 인물쯤으로 여겨졌다. 모든 게 반드시 정의로워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세상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주창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나 찾는 586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랑’을 지킨 586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조 장관을 놓고 “기득권과 엘리트주의에 빠진 586세대의 종언(終焉)”이란 평을 내놓는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평가를 제쳐두더라도 우리 같은 소시민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인물이다. 총장 직인을 몰래 찍어 딸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아내에게, 편법으로 논문 제1저자가 되고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6번 받은 딸에게 “똑바로 살라”고 말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개혁한다는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통해 김광규 시인이 외치고 싶었던 말은 청년 시절 품었던 세상 개혁의 꿈을 지키란 뜻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정당한 절차를 지키고 편법과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였던 듯하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말쑥한 양복에 금색 배지를 달고 다니는 조 장관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이 시의 마지막 대목이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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