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입력 2019-09-18 04:04

조국 장관 부인 사법처리 경우 사태 매듭 짓는 계기될 수 있어
대통령으로서 야당 아닌 국민 바라보고 대승적 결단해야
민주당 의견 듣고 임명 강행… 그에 따른 국민 상처 너무 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한 데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지난 8일 오후 4시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이 회의에서 민주당은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적격 의견을 결정했다. 이어 오후 6시30분부터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낙연 총리, 민주당 이해찬 대표,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여권 핵심 인사들이 참석한 고위 당정청 회의가 열렸고 민주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전달했다.

이때까지 문 대통령은 고심하고 있었다는 것이 청와대 주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에게 장관 임명과 지명 철회 등 두 가지 상황에 따른 대국민 메시지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동남아 순방 후 귀국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의 여러 찬반 의견을 전해 듣고 오히려 지명 철회 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의견을 전달받은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조 장관 임명 후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표는 물론이고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강하게 임명 강행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진영논리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지명 철회로 핵심 지지층이 흔들리거나 권력 누수가 생기면 중도층 이탈보다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정치공학적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검찰을 강하게 성토하는 당 분위기에 맞춰 지지자들이 결집하고 찬성 여론도 약간 높아지는듯 해 임명 강행 주장이 힘을 받았을 수도 있다. 야당 지지율이 워낙 낮아 그냥 밀고 나가도 별 문제 없을 것이란 생각 또한 했는지도 모른다. 초기에 손절매를 하지 못해 판이 커진데다 호미가 아닌 가래로 막는 데 따른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과 예측을 뛰어 넘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점이다. 상처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치유될 것 같지도 않다. 역대 다른 장관들의 경우 청문회 과정에서 다소 논란이 있었더라도 일단 임명하고 나면 조용해지곤 했다. 여권도 그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조 장관 문제는 추석 연휴가 지난 뒤에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평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추석 메시지마저 공허하게 들렸다.

이쯤에서 대통령이 국민에게 져 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정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지층의 실망도 있을 것이다. 야당은 조 장관이 낙마할 경우 자신들이 투쟁해서 얻은 성과로 포장하며 이 문제를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려 할 가능성이 높다. 삭발투쟁은 무용담으로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야당보다 국민을 바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야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져 주라는 것이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 장관 부인의 사법처리 수위에 따라 국민 여론은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그때가 대승적 결단을 내릴 타이밍이다. 사법처리 수위를 예단할 수 없지만 검찰 수사 분위기를 보면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사모펀드 문제와 관련해 조 장관 5촌 조카가 구속되는 등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만일 조 장관 부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이 발부할 경우 조국 사태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조 장관을 임명했다. 그러나 위법을 따지기 이전에 공정성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국민 여론이 나쁘면 의혹만으로 사퇴한 사례도 많다. 김대중정부 당시 김태정 법무부 장관은 임명된 지 보름 만에 부인의 옷로비 의혹으로 해임된 적이 있다.

하물며 부인이 사법처리된다면 남편이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 문 대통령이 말한 명백한 위법 행위 확인이 언제 나올지도 모를 대법원 판결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이 부인을 사법처리 했는데 남편이 다른 장관도 아니고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직을 계속 수행할 수는 없다. 검찰 개혁이 중요하다 해도 동력을 얻기 어렵다. 검찰 개혁 관련법을 다루는 국회는 파행을 거듭할 게 뻔하다.

조 장관 문제 말고도 국가적으로 할 일이 많다. 이달 하순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조만간 북·미 실무협상에 이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갈등 문제는 풀릴 기미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 피폭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생겼다. 자진 사퇴 형식이든 해임이든 조국 사태는 이쯤에서 접는 게 옳다. 분열되고 상처입은 민심을 달래고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 가야 한다. 지난 8일 문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 놓고 읽지 않은 또 하나의 대국민 메시지 내용이 궁금하다. 문 대통령이 한 번 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기를 기대한다.

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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