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반기든 20세기 두 거장 ‘서울 大展’

국민일보

전통에 반기든 20세기 두 거장 ‘서울 大展’

팝아트 로버트 라우센버그·미니멀리즘 솔 르윗 동시 개인전

입력 2019-09-22 20:49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와 솔 르윗(1928~2007).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은 1960년대 미국에서 전통에 반기를 든 새로운 미술을 일으키며 20세기 후반 서양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가로 기록된다. 라우센버그는 팝아트의 선구자로, 르윗은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정착시킨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서울에서 두 대가의 개인전이 때마침 동시에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라우센버그와 르윗의 개인전은 이례적이다. 특히 라우센버그 단독 전시는 처음이다.

라우센버그 작, ‘무제’, 1983년, 종이에 솔벤트 트런스퍼 기법, 수채, 연필 등. 페이스갤러리 제공

라우센버그를 소개하는 곳은 용산구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이다. 페이스는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60년 역사의 세계적 갤러리로 미술사의 거장인 윌럼 데 쿠닝, 마크 로스코 등을 전속 작가로 두고 있다. 홍콩, 베이징에 이어 지난해 3월 서울 지점을 오픈했다.

미국에서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1955년, 당시 30세이던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침대 시트에 이리저리 붓질해서 캔버스처럼 걸어둔 ‘침대’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식의 이른바 ‘콤바인 페인팅’으로 회화도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을 열었다. 그는 또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실크스크린(판화의 일종)하거나 물방울무늬, 꽃무늬 등의 천 조각을 캔버스나 종이에 병치하는 작업을 했다.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온 그의 작품 세계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로 확장됐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 위에 솔벤트 트랜스퍼 기법으로 1983년 제작한 회화 작업 13점이 나왔다. 종이 위에 잡지 등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올린 뒤 특수 용액을 뿌려 그 이미지가 찍히게 하는 판화 기법이다. 용액을 뿌리는 과정에서 수채화나 연필 표현을 더해 회화적인 효과를 강화했다.

작품 속에는 공장 자동차 빌딩 등 산업화하는 미국 사회를 보여주거나 자신이 좋아해 여행까지 했던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것들이 격자 속에 들어앉아 있는데, 이런 격자 연작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대적 아이콘이 된 픽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출품된 13점은 작가가 작고하기 한 해 전인 2007년 스튜디오에서 찾아낸 ‘미발표 원고’ 같은 작품이다. 일상의 미술인 팝아트가 그렇듯 냉각팬 타이어 등 주변의 기성품을 소재로 가져와 조각으로 변형시킨 작품도 볼 수 있다. 11월 9일까지.

솔 르윗 작, ‘스플로치 #1’, 2001년, 유리섬유에 아크릴. 줄리아나 갤러리 제공

강남구 선릉로 줄리아나갤러리는 2000년, 2002년에 이어 세 번째로 솔 르윗 전시를 마련했다. 르윗은 최소 단위인 격자와 입방체를 반복하는 작업을 통해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이끌었다.

최소 단위의 반복은 1968년부터 2007년 세상을 뜨기까지 40년간 1200여점을 남기며 반복했던 월 드로잉(벽화) 연작에도 잘 구현돼 있다. 월 드로잉은 벽에 직선 곡선 혹은 부정형의 선을 다양한 각도와 조합으로 긋고 색은 무채색 혹은 원색으로 채우는 벽화다. 그런데 작가는 선을 어떻게 그을지, 색을 어떻게 칠할지 지시만 하고 제작은 일명 제도사들에게 맡긴다. 실제로 작가인 르윗이 제작한 것은 각각의 작품을 그리는 방법을 기술한 ‘설명서’, 그리고 자신이 구상한 것임을 밝히는 문구와 서명뿐이다.

“미술가가 미술의 개념적인 형식을 사용한다는 말은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며, 실행은 부수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개념이야말로 미술작품을 만드는 장치다.”

이렇게 주장하며 그는 작품의 원본성에 아우라를 부여했던 미술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줄리아나갤러리 개인전에는 월 드로잉에 즐겨 사용했던 입방체를 종이에 과슈화로 그린 회화와 판화 작업이 나왔다. 작가가 말년에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유리섬유에 월 드로잉 때 사용한 배합의 원색을 칠한 스플로치 조각을 제작했는데, 이것도 다수 나왔다. 10월 30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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