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둔감] 나는 왜, 잘 못하는 걸까… 그래, 좀 못하면 어때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둔감] 나는 왜, 잘 못하는 걸까… 그래, 좀 못하면 어때

입력 2019-10-0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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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밤새 속앓이를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툴툴 털고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상처가 되는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무심하게 넘겨버린다. 이렇게 스트레스에 강인한 사람과 취약한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

둔감력(鈍感力)이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둔한 감정과 감각이란 뜻의 둔감(鈍感)에 힘을 뜻하는 역(力)자를 붙인 둔감력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변한 것이다.

둔감력이란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둔감력이란 긴긴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을 뜻합니다. 그저 몸과 마음이 둔한 사람에게 둔감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둔감력은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의 근력 또는 힘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과 의미가 비슷하다. 회복 탄력성은 시련과 역경을 딛고 다시 튀어 오르는 힘이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역경에 맞닥뜨렸을 때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이 올라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둔감력이다. 둔감력이란 단어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역설적인 위로를 준다. ‘좀 천천히 해도 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좀 못하면 어때’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둔감력은 취업난과 불경기가 심각한 요즘 갖춰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둔감력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간을 살고 있다. 둔감력은 자기수용의 의미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회복 탄력성을 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 중 ‘상실과 회복의 법칙’이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법칙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이스라엘로 불리기 위해 밤새 천사와 씨름해 환도 뼈가 부러져야 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와타나베 준이치에 의하면 둔감력을 기르는 첫걸음은 너그러운 부모에게 칭찬받으며 자라는 데서 시작된다. 실패나 실수는 최대한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그 대신 상사에게 칭찬받았던 일,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던 일을 기억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떠올린다. 좋은 의미의 낙천주의가 강인한 둔감력을 키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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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둔감해질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먼저 걱정과 불안의 정체를 알고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걱정은 불안의 결과이며, 걱정이 지나친 이유는 자신을 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자각한다는 것은 현재 마음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아봐 주는 것이다. 걱정을 많이 하면 생각과 행동 패턴이 부정적으로 변한다.

‘우울하지 않았으면, 불안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보다 현재 느끼는 감정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 지혜롭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심사가 꼬일 때 이런 질문이 좋다. ‘이게 정말 화낼 만한 일인가.’ ‘이게 정말 좌절할 만한 일일까.’ 자신의 감정을 좋거나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무시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느낌이나 생각 역시 있는 그대로 또렷이 바라보는 연습이 돼 있을 때 자신이 빠져 있는 고통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의 ‘걱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한다.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한국심리상담센터 강용 대표는 저서 ‘걱정 내려놓기’에서 걱정을 극복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 자신의 걱정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다. 적다 보면 걱정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둘째, 구체적인 내용은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걱정이 계속 진행형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구체적인 걱정을 현실적으로 반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걱정은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면 더 이상 걱정이 아니다. 이외 걱정을 친구와 나누거나 다른 여가활동을 통해 분산시킨다.”

걱정과 불안은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안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찾아야 하는데 보이는 것과 현상적인 것에 눈과 귀가 쏠릴 위험성이 커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자기 생각과 경험 또는 눈에 보이는 힘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하기 쉽다.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잘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하면 믿음으로 행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자각해야 한다.

‘웰빙’보다 ‘라잇빙’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웰빙(well-bing)보다 라잇빙(right-bing)이 돼야 한다. 상처와 아픔은 죄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치유와 회복은 회개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린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자각을 위해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와 찬송가 작사가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잔나 웨슬리는 자녀들의 “죄란 무엇인가요”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너의 생각을 약화시키고, 양심의 민감함을 손상시키고, 하나님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영적인 것에서 흥미를 빼앗는다면… 그것이 너에게 죄이다. 비록 그 자체로는 해롭지 않을지라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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