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검찰의 꽃놀이패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검찰의 꽃놀이패

입력 2019-09-25 04:07

검찰 개혁을 위한 인사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지독한 역설이 진행 중
기득권 내려놓기에 소극적이긴 문무일 검찰이나 윤석열 검찰 크게 다르지 않아


며칠 전 한 일간지에 ‘조국 법무부 장관님께 진정서 올립니다’는 제목의 의견광고가 실렸다. 개인이 낸 이 광고는 “부패사건에 검찰이 봐주기 수사로 일관해 관련 검사 20명을 고소했으나 처벌된 자가 없으니 바로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본인 휴대전화 번호도 공개했다. 비용이 꽤 들었을 텐데 얼마나 억울하면 광고까지 했을까 하는 측은지심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때인 2011년 4월 문 대통령은 비 내리는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1인 팻말시위를 했다. 팻말에는 ‘허위사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즉각 소환하라’ ‘직무유기 검찰권 포기’ ‘차라리 검찰은 문닫아라’는 검찰 비판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공개석상에서 ‘노무현 차명계좌가 있고 노 대통령이 그것 때문에 자살했다’고 한 조 청장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검찰이 뭉개자 시위에 나선 것이다. 검찰은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나서야 소환조사가 아닌 서면조사로 조 청장 조사를 마쳤다. 그는 그 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8월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래도 이 사건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에 비할 바 못된다. 누가 봐도 김 전 차관을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있는데도 검찰은 덮었다. 제 식구엔 한없이 관대한 검찰의 오랜 악습과 정권의 치부를 감추려는 권력의 입김이 상호작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있는 죄도 지워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이 검찰에 있다는 것을 김학의 사건은 여실히 보여준다.

검찰의 조국 법무장관 수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조 장관은 자택까지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검찰은 조 장관 부인을 소환조사 없이 기소한 데 이어 조만간 포토라인에도 세울 듯하다. 조 장관 소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찍이 볼 수 없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다. ‘살아 있는 권력이라도 봐주지 말라’고 한 마당이니 문 대통령도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이 전방위적으로 지원사격을 하고 있으니 검찰은 거칠 게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그토록 반대하던 한국당이 맞나 싶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며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 장관 임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은 문 대통령이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이 연일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여론이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인다. 검찰 개혁을 위한 인사가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지독한 역설이 진행 중이다. 문무일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했다. 윤석열 검찰도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합의로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국회 조정안과는 결이 다르다. 기득권 내려놓기에 소극적이기는 문무일 검찰이나 윤석열 검찰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과의 싸움에서 이겼듯 문재인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검찰은 보는 것 같다. 조국 사건은 검찰에 그런 환상을 심어줬다.

한국당도 검찰에 코가 꿰었다. 검찰은 59명의 한국당 의원이 연루된 국회선진화법 위반 사건을 경찰로부터 가져왔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라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한국당 의원은 단 한 명도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조사는 차원이 다르다. 경찰은 기소할 수 없지만 검찰은 가능하다. 한국당 의원들도 소환조사 없이 기소된 조 장관 부인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검찰 눈치를 봐야 하는 을의 신세다. 검찰은 꽃놀이패를, 그것도 두 패나 갖고 있다. 검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검찰 개혁의 증거’라는 견해도 있다.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가능하다면 모르겠으나 검찰에 그런 기대를 하는 건 시기상조다. 권력은 정치검찰을 만들고, 정치는 검찰이 정치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검찰은 경찰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데다 자체 수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기소권까지 독점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선출된 권력보다 더 센 권력을 갖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견제·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살아 있는 권력도 손대는 검찰이 내부 불법과 비리에 대해서는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 이런 못된 짓 못하도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고 수사권을 조정하자는 건데 검찰은 마뜩잖다.

윤석열 총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나 충성의 대상이 검찰 조직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문무일 전 총장은 “권력기관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손상해 주권자를 역사의 현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기도 한다”는 퇴임의 변을 남겼다. 주권자가 역사의 현장에 나가는 불행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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