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형제 운명 가른 ‘팥죽’ 사실은 렌틸콩 수프였다

국민일보

야곱 형제 운명 가른 ‘팥죽’ 사실은 렌틸콩 수프였다

이스라엘 현지 전문가에게 배운 성경 속 음식 & 메시지

입력 2019-09-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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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경식물원이 지난 16~19일 서울 송파구 주사랑교회에서 진행한 ‘성경 음식 아카데미’에서 수강생들은 고대 이스라엘 방식으로 성경 속 음식을 만들었다. 사진은 19일 수강생들이 만든 지브다, 치즈, 피타 빵과 버터 등의 모습. 송지수 인턴기자

우유와 휘핑크림 등을 비율에 맞춰 텀블러에 넣은 뒤 흔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텀블러를 쥔 손은 저렸고 팔은 뻐근해졌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이 찬양 ‘아름다운 마음들이’였다. 신나는 찬양 소리에 텀블러를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텀블러 속 우유의 출렁거림은 사라졌다. 묵직했다. 뚜껑을 여니 놀라운 게 드러났다. 되직해 보이는 하얀 거품이었다. 면 보자기로 수분을 짜내니 남은 건 생크림처럼 촉촉한 버터였다. 첫맛은 두부 같았지만, 끝맛은 우유였다.

사진=송지수 인턴기자

이스라엘 현지 요리 전문가인 토바 딕스테인(사진) 박사가 창세기의 한 구절을 이야기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창 18:8) 바로 성경 속 ‘엉긴 젖’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주전 4500~3500년 고대 이스라엘에선 텀블러 대신 양가죽을 사용했다는 게 딕스테인 박사의 설명이다. 그 시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줄로 매단 양가죽 속에 우유를 넣은 뒤 아기 요람처럼 흔들었다.

한국성경식물원(원장 박경선)은 서울 송파구 주사랑교회에서 딕스테인 박사를 초청해 지난 5~7일, 16~19일 두 차례 ‘성경 음식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딕스테인 박사는 이스라엘 바일런대에서 ‘로마-비잔틴 팔레스타인에서의 음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학습 컨설팅, 성경 시대의 음식’ 등 성경 음식과 관련된 책을 출간한 성경 음식 전문가다.

이스라엘 현지 요리 전문가인 토바 딕스테인 박사(왼쪽)가 수강생들에게 조리방법을 알려주는 모습. 송지수 인턴기자

교육 마지막 날인 지난 19일에도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 15명이 딕스테인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만들었다. 수업이 끝난 뒤엔 수료증도 받았다.

박경선 원장은 “한국에선 처음으로 성경 음식 요리사를 배출한 프로그램”이라며 “단순히 요리 레시피를 알리는 게 아니라 성경 음식 속에 담긴 메시지를 알려주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딕스테인 박사도 박 원장의 생각에 공감했다. 항공비, 숙박비 등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한국을 찾았다. 주사랑교회는 무상으로 교육 공간을 제공했다.


팥죽 진짜 재료는 팥이 아닌 렌틸콩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창 30:20)

이 구절에서 ‘선물’은 히브리어로 제베드다. ‘좋은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대 이스라엘 식재료인 지브다(ZIVDA)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선물 같은 요리라니, 기대가 됐다.

약한 불에 우유가 담긴 냄비를 올렸다. 우유가 끓어올라 천천히 저으니 기름과 고체가 분리돼 층을 만들었다. 불을 끈 뒤 가장 위에 뜬 지방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그러자 갈색빛 투명한 기름이 나타났다. 지브다였다.

딕스테인 박사는 “버터와 치즈는 냉장 보관하지 않으면, 만든 그날 먹어야 하지만 지브다는 상온에서 한 달까지 보관할 수 있다”며 “사막의 베두힌족도 먹는 지브다는 유랑하는 이들에겐 귀한 식재료”라고 전했다.

요리에 지브다를 사용했다. 보리 알갱이를 프라이팬에 볶다가 지브다를 넣으니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고소했다. 룻이 먹었던 볶은 곡식(룻 2:14), 칼리였다.

이렇게 딕스테인 박사는 1·2차, 총 8번의 강의에서 20개 넘는 요리 조리법을 알려줬다. 이들 음식 가운데 수강생들에게 가장 놀라운 경험을 안겨준 음식은 ‘야곱의 팥죽’이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는 대신 장자권을 받았다. 팥죽이 맛있는 건 알지만 장자권을 팔 정도였을까 싶었던 의문은 ‘진짜’ 야곱의 죽을 먹는 순간 사라졌다.

박 원장은 “사냥을 하고 배가 고픈 상황에서 이 죽을 봤다면 저도 장자권을 팔았을지 모른다”며 “팥죽도 좋아하지만, 이 죽은 정말 맛이 좋다”고 했다.

수강생들도 야곱의 죽을 가장 인상 깊은 요리로 꼽았다. 맛도 맛이지만 재료도 놀라웠다. 팥으로만 알던 죽의 재료는 최근 다이어트 식재료로 주목받는 자줏빛 렌틸콩이었다. 조리 방식은 복잡했다. 다양한 향신료도 첨가했다. 정성을 들인 만큼 맛도 좋았다.

성경 속 음식엔 메시지가 있다

강의 내내 딕스테인 박사가 수강생들에게 강조한 건 요리 레시피가 아니었다. 조리하고 먹으며 음식에 담긴 메시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 속 음식엔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창세기 8장 6~8절 아브라함과 사라가 천사에게 대접한 엉긴 젖과 떡을 소개했다.

딕스테인 박사는 “천사에게 최상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을, 수강생들도 이 음식을 직접 만들면서 이해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바람대로 수강생들은 성경 속 음식이 주는 메시지를 찾았다.

인천하나교회 윤경혜(59) 사모는 “이제 구약 속 환경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면서 “식기와 재료가 간소해 처음엔 요리가 될까 싶었는데 유목민족인 이들에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 이번에 배운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샤론의꽃명성교회 교육부를 맡고 있는 김동휘(36) 목사는 “교회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볼 예정”이라며 “성경 속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면 말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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