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조국 블랙홀과 검찰 개혁

국민일보

[여의춘추-라동철] 조국 블랙홀과 검찰 개혁

입력 2019-09-27 04:01

법무부 장관 자리의 엄중함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닌지 되돌아보고 책임 질 건 져야
여권, 검찰 수사 결과 존중하고 새출발해야 검찰 개혁의 명분과 동력 되살릴 수 있어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로 나라가 갈렸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이들의 열혈 지지층에서는 검찰 개혁 적임자인 조 장관을 낙마시키려고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 지지층은 검찰 수사에 지지를 보내며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수들까지 조국 지지파와 사퇴 촉구파로 갈려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수사가 조 장관 가족에 대한 소환조사로 막바지에 다다르자 양측의 대립은 더 격화되는 모양새다. 내 편에 유리하면 선이고 불리하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던 중간층과 관망파들도 어느새 어느 한 쪽의 구심력에 끌려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다. ‘조국’은 어지간한 정치적 이슈들은 모두 빨아들여 무력화시키는 블랙홀이 됐다. 팩트와 추정, 주장이 뒤섞이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어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이 사안을 정파적 입장에서 다루고 있어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사태는 그야말로 초유의 연속이다. 검찰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장관 후보자, 그것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각종 의혹에 대한 정황 증거들이 쏟아지고, 부인이 기소됐는데도 사퇴는커녕 법무부 장관에 취임해 검찰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연일 광폭 행보를 펼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할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사태는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냉정과 상식, 양식을 되찾아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번지게 된 과정을 되짚어보고 자성함으로써 이성적으로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조 장관에게 있다. 법무부 장관 자리의 엄중함을 너무 가볍게 여긴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부인과 자녀들의 불법 여부와 조 장관의 관여 여부는 확인 단계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압수수색 직전 부인이 대학 연구실에 있던 자신의 개인용 PC와 자료를 몰래 반출하고 자택 PC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것은 뭔가를 숨기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족하다. 자신과 가족이 편법과 반칙에 기대 사익을 챙겼다면 도덕적으로 문제지만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법무부 장관 직을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며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것은 법무 행정을 책임지고,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 장관이 주창하는 검찰 개혁과 법무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나. 대통령과 여당도 결정적 하자가 드러난 이후에도 조 장관을 계속 옹호하다가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요석(要石)이라며 살려보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대마(大馬)가 몰살돼 전체 판을 그르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검찰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댐으로써 정치의 시간을 순식간에 검찰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건 진전이지만 검찰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기에는 이르다. 수사 착수 시기와 규모, 방식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권력형 비리가 아닌데, 대학 교수 시절의 개인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이렇게 전방위인 수사를 벌이는 건 이례적이다. 윤석열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공익적 필요에 합당한 수준’ ‘헌법에 따른 비례와 균형’의 기준에 합당한지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최종 결정권자라는 오만한 생각은 없었는지를 윤 총장은 자문해봐야 한다. 위법 행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하지만 수사는 공평무사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검찰 개혁이 좌절돼선 안 된다. 조 장관이 낙마하든, 그렇지 않든 개혁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검찰은 이번에 살아 있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냈다. 검찰 개혁에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다음은 검찰의 권한을 내주는 것이어서 내키지 않겠지만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여권도 수단과 목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아니다. 조 장관과 검찰 개혁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기기만이고 오만이다. 검찰 개혁의 키는 국회가 쥐고 있다. 야당과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 개혁 법안은 좌초될 수 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존중하고,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후 진용을 다시 짜 새출발을 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 개혁의 명분과 동력을 살릴 수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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