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종수] 틀린 말도 싸가지 없이

국민일보

[한마당-신종수] 틀린 말도 싸가지 없이

입력 2019-09-27 04:05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호하는 과정에서 한 말들이 생각보다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말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 유 이사장은 말만큼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노무현정부 시절 김영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저토록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라고 말해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만 유 이사장이 갖고 있는 논리나 적확성만큼은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옳은 말도 아니고 틀린 말을 싸가지 없이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 장관 부인의 컴퓨터 반출에 대해 “검찰이 장난칠 경우를 대비해 컴퓨터를 복제하려고 그랬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발부하지 말라고 법원에 압력을 가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얼마 전에는 대학생 촛불시위가 자유한국당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거악에 맞서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하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언행을 해도 많은 국민들이 용인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유 이사장은 불공정을 비호하기 위해 희한한 논리를 동원했다. 친문세력을 결집하고 이들이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했다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지지층의 환심은 샀을지 몰라도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제부터 유 이사장이 하는 말에 대해 진위와 의도를 의심하거나 정파적인 주장으로 여기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말에 대한 신뢰 상실은 존재에 대한,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신뢰 상실로 연결된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이념과 정책의 차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군사독재 시절 진보는 도덕적 우위와 신뢰를 확보하고 있었다. 진보와 보수는 민주와 반민주, 양심과 비양심,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 심지어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보는 국민도 많았다. 불의한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정의, 공정 등은 진보의 상징이었다. 말이나 메시지의 영향력도 컸다.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영향력이 떨어진다. 공평한 사회, 공정과 정의,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얘기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극렬 지지층만 듣는 말은 생명력이 없다. 유 이사장이 큰 것을 잃었다.

신종수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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