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돈과 한계행복체감의 법칙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돈과 한계행복체감의 법칙

입력 2019-10-01 04:05

빈곤은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
행복의 조건:건강 빚없음 양심
남과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어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답


흔히들 돈과 행복은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을 논하는 학자나 저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돈이 행복의 기본 요건이라 생각해서다. 돈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상당수는 속마음 숨기고 허세 부리는 거짓말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람 가운데 큰 부자인 경우 가난한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아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참 많다. 돈이 많으면 남들보다 더 넓고 쾌적한 집에 살며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사 입을 수 있으니 그만큼 행복할 것이다. 안전하고 고급인 승용차를 몰 수 있고, 원하는 곳 어디라도 여행할 수 있으며, 건강검진도 자주 받을 수 있으니 행복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사실 효도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으며, 가난이 가정 불화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자아실현에도 돈이 중요한 도구 역할을 함엔 틀림이 없다.

문화심리학자 한민도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일상적인 장애물은 빈곤”이라며 돈과 행복이 관계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할 기회가 많다. 돈이 있으면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고,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며, 충분한 여가와 휴식을 즐기고, 때로 정신과에 가거나 상담을 받으면서 멘털을 관리할 수도 있다.”(‘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위즈덤하우스)

언젠가부터 소득이나 재산의 크기가 어느 정도면 적정할까 가끔씩 생각해본다. 사람마다 삶의 철학과 방식, 씀씀이의 수준이 다르니 통용될 수 있는 정답은 없다고 봐야겠다. 백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 교육을 책임질 정도의 재산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액수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부모를 최고급 요양시설에 모시고 아들딸 모두 해외유학 보내려면 중산층도 언감생심일 정도로 상당한 재력을 요하지 않겠는가.

한때 나는 살기에 적정한 아파트 크기를 26평 정도로 상상한 적이 있다. 직장 초년병 시절 선배 집에 갔다가 26평형인데 방이 3개임을 확인하고, 결혼해서 아이 둘 낳아 사는 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꿈이 소박했던 것 같다. 운이 좋아 결혼한 지 불과 5년 만에 32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노후의 내 ‘희망 경제력’을 생각해 본다. 우선 책은 마음껏 사볼 수 있어야겠다. 이런 저런 취미생활하는 데 큰 부담 없어야겠다. 친한 친구,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겠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어야겠고, 가끔이라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기분 좋을 때 딸들한테 외식하라고 봉투 하나씩 찔러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금전적으로 이 정도는 돼야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려면 고정 수입, 혹은 보유 재산이 얼마쯤 돼야 할까. 퇴직이 코앞에 닥쳤으니 이런 생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얼핏 든다. 그럼 나의 노후 행복은 물 건너간 것인가.

다행히 나를 위로, 격려해주는 듯한 행복 연구자가 적지 않다.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수입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경우 수입 증가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30개국의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일정 소득 수준이 넘으면 돈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득이나 재산이 늘어나면 행복 수준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지만 그것이 제법 많은 상태에서 추가되는 것은 행복을 높이기는 하지만 크게 높이지 못한다는 이론은 정설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빗대 나는 이를 ‘돈의 한계행복체감의 법칙’이라 부르고자 한다.

네덜란드 속담은 돈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듯하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단란한 가정은 살 수 없고, 침대를 살 수 있지만 편안한 잠은 살 수 없으며, 시계를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또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으며, 피를 살 수 있지만 생명은 살 수 없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 빚 없음, 깨끗한 양심 등 세 가지를 적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행복을 구하는 데 빚이 없으면 되지 굳이 돈이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닌가. 나도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 욕구를 충족할 정도는 가졌으며, 빚도 크게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제 돈에 미련 갖지 말고 조금은 초연해질 필요가 있을진대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아닐까 싶다. 행복의 크기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상당히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돈을 바란다면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가진 것 남과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심보를 갖거나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경우 행복은 영영 붙들기 어려울 것이다. 옛 성현들이 매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친 이유인가 보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