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12살 에스티, 하루종일 잡초 뽑은 돈 1달러로 엄마와 연명

국민일보

[밀알의 기적] 12살 에스티, 하루종일 잡초 뽑은 돈 1달러로 엄마와 연명

안희묵 세종 꿈의교회 목사 인도네시아 방문기

입력 2019-10-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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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인도네시아 동부 망가라이 지역에서 만난 12세 소녀 에스티(왼쪽 네 번째)의 집을 안희묵(오른쪽 세 번째) 세종 꿈의교회 목사와 월드비전 전영순 나눔본부장(오른쪽 두 번째) 등이 찾아 위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동부 누사특가라티무르주 망가라이 지역의 한 산촌. 이곳은 수도 자카르타에서 1200㎞ 동쪽에 있는 산악 지역이다. 고도 1000m가 넘는 고산지대 곳곳에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은 1년 내내 낮 기온 30도가 넘는 열대성 기후로, 대부분 주민은 이모작 쌀농사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풍성한 농사는 고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해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달 4일과 5일 안희묵 세종 꿈의교회 목사와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시카(10)와 라벨(8) 남매는 자신들의 먹거리인 ‘우비’ 잎을 따려고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아이들이 손을 뻗어 우비를 따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던 안 목사가 “내가 따줄게” 하며 다가갔다. 우비 나무는 고구마와 같은 구황작물로 이곳 주민들은 그 이파리를 따서 삶아 밥과 함께 먹는다. 허름한 시카의 집 앞에는 우비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이 집의 유일한 먹거리처럼 보였다.

두 아이는 여든을 넘긴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는 모두 집을 떠났다. 아빠는 2011년, 엄마도 2년 뒤 가출해 돌아오지 않았다. 남매는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2015년 할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카가 사실상 이 집의 가장이었다.

시카의 집은 전등은 있으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에 낡은 담요가 깔려있었다. 시카의 할아버지 미코(81)씨는 거동이 불편했다. 그는 바닥에 한쪽 발을 뻗은 채 앉아 한쪽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는 “얼마 전 몸이 아파 집을 비운 일이 있다. 그때 아이들을 이웃집에 맡겼는데 거의 먹지 못했다”며 “내가 늙고 기력이 다해 죽으면 누가 아이들을 돌볼지 모르겠다. 답답하다”고 걱정했다.

안 목사는 이번엔 ‘잭푸르트’라고 부르는 열매를 따기 위해 4m 길이의 나무 막대기를 사용했다. 야자수처럼 생긴 이 나무엔 30㎝ 크기의 연둣빛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안 목사가 나무 막대를 이리저리 돌리자 열매가 툭 하며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카와 라벨이 환하게 웃었다.

안희묵 목사가 앞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시카(10)와 동생 라벨(8) 집을 찾아 발을 씻겨주고 있다.

아이들은 집에서 300여m 떨어진 윗동네 우물에서 물을 떠 온다. 안 목사는 자신이 직접 물을 떠 오겠다면서 두 통의 물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그 물로 아이들의 발을 씻겼다. 신발도 신지 않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안 목사는 마치 자기 아들과 딸의 발을 씻기듯 정성스럽게 닦았다.

“시카야, 발에 웬 상처가 이렇게 많니.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너를 이렇게 씻겨 줄 텐데…”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엔 땀과 눈물이 범벅됐다. 안 목사는 아이들에게 운동화와 새 옷을 선물로 주며 “학교 잘 다녀~”하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다.

다시 장소를 옮겨 찾아간 집은 12살 소녀 에스티가 사는 곳이다. 산 중턱 좁은 길에서 벗어나 길 없는 논두렁과 바위틈 사이를 지나야 했다. 집엔 에스티와 엄마, 둘만 살았다. 아빠는 올 초 귀가 도중 발이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에스티의 엄마는 아빠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몇 달씩 혼이 빠진 사람처럼 집 주위를 서성거렸고 집 앞에 쭈그려 앉아 산만 쳐다본다고 했다.

에스티의 집은 양철로 만든 집이다. 나무판자로 벽을 둘렀는데 많이 낡아 보였다. 집 앞엔 16.5㎡(5평) 크기의 작은 논이 있었다. 다른 사람 논이었다. 에스티는 이 논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온종일 하면서 하루 1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이날도 에스티와 엄마는 논에서 잡초를 뜯고 있었다. 안 목사는 이들 옆에 다가가 일을 도왔다. 팍팍한 땅을 파서 깊이 파고들어 간 잡초 뿌리를 뽑았다.

안희묵 목사가 에스티와 그의 엄마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모습.

안 목사는 에스티 가족이 밥을 먹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한국월드비전이 준비한 쌀로 직접 밥을 지었다. 안 목사는 과거 자신도 땔감으로 가마솥에 밥을 지어본 적이 있다며 매캐한 연기를 피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불을 지펴 밥을 했다. 다른 반찬은 없었지만, 흰밥과 물을 에스티와 엄마에게 주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안 목사는 “에스티는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며 자랄 때인데 살기 위해 이런 논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며 “누군가 이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희망이 없겠다.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중개발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이다.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 중이지만 여전히 빈곤 상태에 처한 주민과 아이들이 존재한다. 월드비전은 1998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전체 32개 사업장에 730여명이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한국월드비전이 후원하는 망가라이 지역 사업장은 결연 아동만 3000명에 달한다.

전영순 월드비전 나눔본부장은 “이번에 만난 시카와 라벨, 에스티는 모두 월드비전 결연 아동으로 선정돼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며 “월드비전은 현지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돕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망가라이(인도네시아)=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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