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순복음 무덤? 내가 깰 것”… 겁없이 개척 나서

국민일보

“울산은 순복음 무덤? 내가 깰 것”… 겁없이 개척 나서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6>

입력 2019-10-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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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성 울산온양순복음교회 목사가 2004년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 개척한 교회 전경.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신학교는 순복음을 택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순복음교회로 보내주시면 평생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단의 편견을 깨고 성령 운동을 전파하는 데 목숨을 걸겠습니다.”

2003년 9월 서울 순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에 원서를 내 합격했다. 대한민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곳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개척 예정지는 세종시였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 중에 강헌식 평택순복음교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울산은 순복음의 무덤이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고향인데 왜 순복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개척지를 울산으로 변경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산에 가봤다. 시내에 개척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땅값이 상상을 초월했다.

‘시내보다는 외곽에 싼 땅을 사서 그곳에 교회를 직접 지어야겠다.’ 여기저기 장소를 물색하다 보니 울산 시내에서 점점 멀어졌다.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농촌마을까지 갔다.

그곳은 우상과 미신에 찌든 곳이었다. 복음이 들어온 후 한 번도 순복음 교단의 교회가 세워진 적이 없는 동네였다. 작지만 장로교단의 텃밭이었다. “이곳이다. 순복음의 무덤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게 하리라!”

한국에서 유학센터를 하고 일본에서 과외를 하며 모아뒀던 돈으로 교회부지 264㎡(80평)를 사고 자그마한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교인 한 명도 없이 재정적 후원 없이 개척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젊은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몸으로 겁도 없이 개척을 감행했다.

신학교를 오가면서 손수 벽돌을 지고 등짐을 날랐다. 가진 건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서울에 공부하러 올라갔다가 주말엔 내려와서 건축 작업을 했다. 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재료비를 모으고 그렇게 오랫동안 공사를 했다.

2개월이면 끝날 158㎡(48평) 예배당 공사가 6개월이 넘도록 계속됐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에 젖는 골조를 보며 마음도 촉촉하게 젖었다. ‘젊다는 게 뭐냐. 젊은 날엔 고생도 사서 한다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몸을 바친들 그 무엇이 아까우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는 기쁨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정말 피와 눈물과 땀으로 건축한 건물이었다.

건물 형태는 대략 갖췄지만, 막상 꼭 필요한 것들은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강대상도, 마이크도, 앰프 시설도 없었다. 심지어 장의자도 하나 없었다. 의자는커녕 당장 내일 먹을 쌀도 없는 지경이었다. ‘신앙의 선배들처럼 정말 돗자리를 깔고 사과 궤짝이라도 갖다 놓고 예배를 드려야겠다.’

기적적으로 한 기도원에 버려진 강대상과 장의자가 몇 개 있다는 단비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얻어왔다. 개척했다가 문 닫은 교회에서 내놓은 장의자도 몇 개 주어왔다. 멀리 부산에 있는 군부대에서 부대교회를 새로 건축하며 낡고 오래된 의자들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트럭을 빌려 싣고 왔다.

그렇게 의자를 갖다 놨는데 각각 크기가 다른 의자들이 비뚤배뚤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줄이 맞지 않고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예배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정글의 나뭇가지 헤치듯 요상한 춤을 추며 간신히 의자에 앉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전도사님, 예배당이 중고 성구사 전시장 같아요.” “길이가 제각각이죠?” “전도사님, 의자 길이가 제각기 다른 것은 무슨 심오한 뜻이 있나요. 길이도, 모양도, 높이도 다 다르네요.”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예배드리러 올 때 다윗처럼 즐겁게 춤추며 들어오라는 하나님의 배려이며 기가 막힌 섭리입니다.”

얻어 온 피아노는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방송시설은 꿈도 못 꾸고 야유회 때나 들고 다니는 이동식 앰프에 1만3000원짜리 마이크를 사용했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다.

‘예배당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렇게 울산에서 서울로 신학교를 오가며 공사하랴, 창립 예배 준비하랴 분주하게 한 해를 보냈다. 드디어 2004년 1월 1일 건물이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창립 예배를 드렸다.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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