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말 많고 탈 많은 안심전환대출 정책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말 많고 탈 많은 안심전환대출 정책

입력 2019-10-02 04:02

빚내서 집 산 유주택자는 대출 환승 허가하고
무주택 서민은 자격 없다고 막는 등 역차별
흥행 대박에도 불구하고 ‘진짜 서민’은 빠지고 수요예측도 실패…
총선용 선심성 논란도


4년 전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부 덕을 봤다. 고마운 정부 정책으로 인해 내 대출금리가 1.6% 포인트나 내려갔다. 2015년 3월 주택담보대출의 변동금리(혼합형 포함)를 고정금리로 바꿔주기 위해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안심대출)은 나 같은 사람에겐 희소식이었다. 몇 년 전 은행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이 안심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5년간 고정금리로 이자만 낸 뒤 그 이후부터는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혼합형 대출구조가 나를 안심대출로 환승할 수 있게 해줬다. 대출금리는 연 4.25%에서 2.65%로 뚝 떨어졌다. 매달 절약되는 이자가 10만원이 넘었으니 정부 조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마음도 들었다. 한국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변동금리 리스크를 줄여나가겠다는 정책의 방향은 맞지만 나보다 더 경제적 여력이 없는 계층이 혜택을 보는 게 나을 텐데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안심대출은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대출한도 20조원이 일찍 소진돼 연장판매를 통해 실제 대출 규모가 34조원으로 늘어났다. 한데 소득 자격조차 두지 않아 연소득 1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들도 환승에 성공해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 이후 고정금리 상환방식을 유도해온 정부 시책을 믿고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이들은 안심대출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불만이 폭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최저 연 1%대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2차 안심대출이 ‘서민형’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또다시 나왔다. 주택가격 9억원 이하, 1주택 가구, 부부합산 소득 연 8500만원 이하 대상자들을 상대로 연 1.85~2.20% 금리로 기존 대출을 5억원까지 전환해주는 상품이다. 30일 신청 결과를 집계해보니 대박이 났다. 63만여명이 몰렸고 신청액은 공급 총액 20조원의 4배에 육박하는 74조원 규모에 달했다. 1차 때보다 금리가 파격적으로 낮아졌으니 인기 만점인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정부가 당분간 추가 공급은 없으며 당초 방침대로 주택가격이 낮은 순으로 대상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혀 100% 당첨(요건 미비 제외)된 1차 때와 달리 절반 이상이 탈락할 지경이 됐다.

흥행 대박이라고 해서 정책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문제투성이다. 우선 ‘서민형’ 논란이다. 자격조건인 집값 9억원 이하, 연봉 8500만원 이하가 어떻게 서민형으로 둔갑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집값이 비싼 서울의 주택 중위매매가격(중간가격)이 6억4710만원이고, 보건복지부가 결정한 2020년 기준 중위소득은 4인 가구 월 474만여원으로 연봉 5700만원 정도다. 이보다 훨씬 높은 집값과 소득을 기준으로 잡고 서민형이라고 했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런 비판에 코너로 몰렸던 당국이 신청 폭주 덕택으로 기사회생했다. 대상자 선정 커트라인이 주택가격 2억원대 초·중반으로 현저히 낮아지는 바람에 서민형 논란을 그나마 희석시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주택자 역차별 불만까지 잠재우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보유한 가구주는 10명 중 6명이다(국토교통부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치솟는 집값 잡겠다는 현 정부가 빚내서 집을 산 유주택자에겐 환승 게이트를 열어준 반면 전세·월세살이로 떠도는 무주택 서민은 ‘자격 미달’이라는 바리케이드로 막아놨으니 그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게다. 무주택자들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도 평균 2.8% 안팎으로 안심대출보다 높다. 이것만 봐도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정책이 우선시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주거 취약층은 외면한 채 당국은 가계부채 안정화라는 정책 목표 타령만 한다. 기존의 순수 고정금리 대출자들이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안심대출 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것도 형평성 시비를 낳는다.

결과적으로는 수요예측에도 실패했다. 금융 당국의 안일함과 무능함을 드러낸 셈이다. 엉터리 수요예측으로 신청자격 문호를 터무니없이 넓히면서 탈락자들의 허탈감만 커지게 됐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지원 요건을 집값 9억원 이하로 했다는 게 당국의 변명인데 외부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겨냥해 이곳 지역의 비싼 집값을 기준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그런데 어쩌랴. 수요예측이 빗나가 집값 3억원 이상의 탈락자들이 수도권에서 대거 나오게 생겼으니 말이다.

정부가 일단 대출 추가 지원을 부인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2015년 특판대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또 상품이 출시되지 않았는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대증요법과 선심성 정책에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는데 이벤트성 유사상품이라도 나올지. 탈락자나 무자격자들은 기다려봄 직하다.

P.S. 1차 안심대출 때 혜택을 다본 당신이 왜 이러쿵저러쿵 떠드냐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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