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장로 부부의 아들, 소년원에서 만나 회심 이끌어

국민일보

빗나간 장로 부부의 아들, 소년원에서 만나 회심 이끌어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13>

입력 2019-10-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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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숙 서울 대망교회 사모(왼쪽)가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대망교회에서 열린 금요치유집회에서 혈액투석 환자를 위해 신유기도하고 있다.

1986년 전북 전주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집회 중 그 교회 장로님 부부가 나와서 특송을 했다. 은혜로운 찬양이었다. 곡조 있는 기도로 느껴질 만큼 애틋한 뜻을 담고 있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할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뭔가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를 마치고 안수기도를 했다. 손을 얹자마자 눈물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아,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일까. 아버지께서 무슨 문제를 또 해결하실까.’ 예상한 대로 집회가 끝나자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부부가 숙소로 찾아왔다. 사연인즉 장로님의 아들이 친구를 잘못 사귀어 먼 곳에 가 있다고 했다. “어디요?” 목사님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셨다. “전주 근처 소년원에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깊이 자리 잡아 소년원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아들을 만나주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장로님 부부가 자리를 비운 뒤 담임목사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목사님, 무슨 이유가 있죠? 아까 장로님 아들 말입니다.” 권사님은 아들을 낳지 않은 새어머니였다. 장로님이 원래 부인과 사별한 뒤 그 자리를 채웠다고 했다. 권사님은 기도도 많이 하시고 교우들에게 존경받는 분이었다. 권사님은 나이 많은 노처녀로 살다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장로님의 마음이 좋아서 부인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사춘기 아들은 어린 마음에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권사님이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겉돌았다고 한다. 그 일로 아들은 교회도 나오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러 나쁜 친구만 사귀며 어머니를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지내다가 몇 번씩 경찰서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소년원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장로님은 아들 때문에 시무장로 직분을 휴직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로님 부부와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부흥회를 마치고 소년원에 가기로 약속했다. 부흥회의 남은 시간, 장로님 부부는 더욱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교우들 역시 장로님의 가정과 그 아들을 위해 함께 부르짖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소년원이었다. 그 아들을 만났다. 동행한 새어머니를 보는 순간 아들의 마음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아들의 행동이 난폭해졌다. 괴로운 마음으로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의 대화였지만 아이의 마음에 자리 잡은 믿음이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했다.

전주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온 지 2주일이 지나갔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병자들을 안수하며 매일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소년원의 그 어린 아들 생각뿐이었다. 말은 어린 아들인데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몸집도 왜소했다. 금요일이 되자 아버지께 금요 철야예배를 인도할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전주로 향했다. 정말 소년원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각오를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반나절 걸려 전주에 도착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소년원에 갔다. 하루 면회신청을 했는데 되지 않았다.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로님이 면회신청을 전화로 해주셨고 허락이 떨어졌다. 그 아들이 나왔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자기를 다시 찾아왔다는 이유로 고분고분 따라 주었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얼마간의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대화가 중단됐다.

그때부터 찬양을 했다. 나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찬양하며 기도했다. 듣든 듣지 않든 3시간쯤 찬양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아는 찬양은 모두 불렀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렇게 찬양을 하는데 아이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나왔다.

‘아, 됐다. 하나님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언제 오셨는지 장로님이 뒤에 서 계셨다. 그날 저녁 면회 장소는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권사님도 오셨지만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왔는데….” 조심스레 건넨 장로님의 한마디에 “엄마?”라고 아이가 반문했다.

순간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너의 엄마.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너의 엄마. 너를 낳아 주신 엄마는 천국 갔지만, 너를 위해 하나님이 또 허락하신 널 위해 기도하는 너의 엄마.” 이 한마디에 장로님과 권사님이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들도 성령에 사로잡혀 마음이 돌아왔다. 악한 마귀, 우리를 괴롭히는 정신적 분노, 이 모든 것이 주의 이름으로 쫓겨나간 것이다.

몇 달 뒤 다시 전주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목사님이 “타 교회 교인인데, 강사님을 잘 아시는 분이라며 특송을 신청했다”고 했다. 바로 그 장로님 가족이었다. 세 사람이 앞으로 나와 특송을 했다. 너무나 놀라웠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한 그 가족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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