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국민일보

[이슈&탐사]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한국사회 잔혹극 ‘살해 후 자살’

입력 2019-10-07 21:17 수정 2019-10-08 09:25


이달 초 또 안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도와 경남 김해에서 부모에 의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은 각각 12살과 8살, 5살과 4살이었다. 모두 부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자녀를 살해한 사건이다.

안타까운 죽음은 반복되고 있다. 2009년부터 최소 279명(미수 포함)의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에 강제 동반된 것으로 7일 국민일보 집계 결과 나타났다. 매달 두 명꼴이다. 이 기간 발생한 20세 이하 살인사건 피해자(미수 포함)는 700여명이었다. 미성년 살인사건 피해자 셋 중 한 명은 부모의 극단적 선택 때 함께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아이들은 생명을 다 살아보지 못하고 꿈을 키워갈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그동안 ‘일가족 자살’ ‘동반자살’ 등으로 여겨져 안타까운 가족사로 기록됐다. 관심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 사연에 주로 집중됐다. 자신이 가장 믿고 따랐던 이들에 의해 생을 마감한 아이들의 마지막은 적막했다.

국민일보는 2009년 이후 발생한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 사건 중 미성년 자녀가 피해자인 사건 수사자료, 살해 자살 미수자 판결문, 언론보도 등을 분석했다. 실체 확인을 위해 사건 발생 관할지 경찰관 40여명을 인터뷰했고, 유가족도 만났다. 자살 및 아동 관련 상담사와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문도 했다.

부모가 삶의 문제를 비관하다 극단적 선택을 할 때 자녀를 먼저 살해하는 현상은 한국에서 높은 비율로 발생하고 있다. 독립적 인격체인 자녀들을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비극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는 그 밖의 다양한 요인들도 함께 목격됐다. 가해자들은 사건 당시 30, 40대가 다수였다. 막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이들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들은 주로 가정에서의 관계 문제, 빚이나 먹고사는 문제, 정신적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떠안다 죽음을 결심했는데, 자녀를 먼저 죽였을 뿐이다. 성경은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라’고 명령하고 있다. 자살을 핑계로 자녀의 목숨까지 건드리는 행위는 범죄일 뿐이다.

비극이 한국에서 빈번한 것은 이를 한 가족이나 개인의 일탈로만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가해자의 마지막 행적에선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발견됐다. 국가나 사회가 생명을 보호해야 할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지원하고 있다는 신뢰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공동체적 가치관과 사회안전망 약화에 따른 병리적 현상으로 봤다.

아이들의 죽음은 지금껏 자살사건의 부수적 문제로 여겨져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수년째 지적이 있어왔지만 아직 관련 통계조차 없다. 국민일보는 위기의 아이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 비참한 현실을 전하려 한다. 관련자들이 다시 고통받지 않도록 일시나 장소 등을 특정하지 않고 실명도 숨겼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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