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녀 살해 후 자살, 비극이 아니라 범죄다

국민일보

[사설] 자녀 살해 후 자살, 비극이 아니라 범죄다

경제상황과 연동된 발생 추이에 최근 급증세…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 바꾸고 공동체 기능 정비해야

입력 2019-10-09 04:01
경기도 시흥에서 7일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 부부의 곁에서 생을 마감한 두 자녀는 어렸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었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먼저 숨지게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사건을 ‘동반자살’이라 불렀던 사회적 인식은 살인 방조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 그런 선택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을 어린 자녀를 부모가 살해한 것인데, 이를 자살의 범주에 넣음으로써 끔찍한 범죄를 안타까운 일로 여겨지게 했다. 동반자살은 없다. 살인과 자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 사건일 뿐이며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시흥 사건은 이달 들어 일주일 새 벌어진 세 번째 ‘살해 후 자살’이었다. 제주도와 경남 김해에서도 어린이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에게 죽임을 당했다. 열두 살과 여덟 살, 다섯 살과 네 살인 아이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가 겪는 삶의 문제를 자녀에게 전가한 것이었다. 자신이 생을 마감하려 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였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의 발생 빈도는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국민일보가 지난 10년간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 23건에 피해아동 3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후 줄었다가 경기 침체가 가속화된 지난해 20건에 32명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벌써 16건이 발생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기록을 전수조사 해보니 대부분 빈곤, 채무, 사업실패 등의 경제적 어려움이 배경에 있었다. 자신의 극단적 선택 이후 자녀에게 고통이 대물림될 것을 걱정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어떤 부모는 놀라운 스펙을 물려주는데 어떤 부모는 생활고를 물려줄까 두려워 살인을 저지르는 양극화의 단면이 살해 후 자살 현상에 담겨 있다. 가해 부모의 심리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발견했다. 자신이 떠나면 남겨질 자녀들이 사회적 보살핌을 받지 못할 거란 생각에서 끔찍한 행동을 저질렀다. 사건의 이면이 이렇다는 사실은 살해 후 자살을 어느 가족의 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사회가 낳은 병리현상이고 우리가 함께 치유해야 할 문제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살해 후 자살은 비극이 아닌 범죄다. 안타까움보다 아이의 생명과 기회를 박탈했다는 분노를 느껴야 한다. 가장 의지했을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아이가 더는 없도록 공동체의 기능과 역할을 정비해야겠다.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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