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유산이 고스란히…“대구 근대골목길 탐방 오세요”

국민일보

근현대 유산이 고스란히…“대구 근대골목길 탐방 오세요”

20세기 역사 품은 대구 도심

입력 2019-10-09 18:26
대구 도심에 20세기 근현대사를 품은 골목길이 있다. 그 길엔 6·25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때 낙후된 지역으로 ‘찍혀’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곳이 사람들의 발기를 이끄는 여행지로 변모했다.

대구근대골목은 주제별로 총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 2코스 근대문화골목, 3코스 패션한방길,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5코스 남산100년향수길이다. 하루에 모두 돌아보는 건 무리다. 겹치는 구간이 있는 1∼3코스의 핵심만 둘러봐도 좋다.

대구 도심에는 6·25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1893년 미국 북장로교에 의해 설립된 경북 지방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옛 대구제일교회.

먼저 1893년 미국 북장로교에 의해 설립된 경북 지방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옛 제일교회를 찾았다. 미국 뉴욕의 성 베네딕트 성당의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1933년에 붉은색 벽돌로 직사각형 모양의 교회당이 새로 지어지며 이름을 제일교회로 바꾸었고, 1937년 중앙현관 오른쪽에 종탑이 세워져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 처음 이름은 남성정교회였으나 1933년 제일교회로 바꿨다. 1937년 중앙현관 오른쪽에 종탑이 세워져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됐다. 1919년 제일교회 이만집 목사 등 대구 기독교 인사들은 ‘대구 3·1운동’에 앞장섰다. 전국 3·1운동 중 기독교인의 참여 비율이 가장 높았다.

교회 바로 앞에는 대구YMCA의 전신인 ‘교남YMCA’ 회관이 원형 복원돼 있다. ‘교남’(嶠南)은 조령 남쪽의 경상도라는 의미로 영남을 뜻한다. 교남YMCA 회관 1·2층에는 대구 3·1운동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인물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대구는 임진왜란 이후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남도의 물산이 모여드는 집산지가 됐다. 이에 따라 많은 시장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약재를 사고파는 약령시였다. 1970년대에 약전골목이라고 부르는 거리가 만들어져 침체됐던 약령시의 위세를 끌어올렸단다.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61년 전통의 대구 약령시의 문화를 보존하고 한방문화를 알리기 위해 개관했다. 박물관 3층은 약령시의 전통과 한의약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한의약 전시존, 2층은 한방체험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문학관.

약전골목 일대는 소설가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마당 깊은 집’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마당이 넓은 솟을대문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로 TV 드라마로도 재구성됐다. 골목 곳곳에는 대구 최초의 붉은 벽돌 이층집인 정소아과 등 소설에 등장하는 집들이 몇 채 남아 있다. 올해 초 마당 깊은 집을 주제로 한 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중학생 길남이의 시선으로 본 소설 속 한 집 여섯 가구의 오밀조밀한 모습들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약전골목에서 종로로 접어들면 조선시대 때부터 대구의 유지들이 많이 살았다는 진골목이 기다린다. ‘긴 골목’을 뜻하는 진골목에는 근대 문화재와 전통 한옥이 잘 남아 있다.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 명예회장, 향토 소주회사 금복주 창업주인 김홍식 회장,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 서병원 등의 저택이 있는 대구의 대표적 부촌이었다.

대구근대역사관 내 옛 조선식산은행 금고.

다음은 1932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립된 뒤 2011년 개관한 대구근대역사관. 1932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에 대한 금융지배와 식민지 수탈의 상징으로 악명이 높았던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된 서양풍의 건물이다. 광복 후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을 거쳐 2011년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체험학습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췄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대구지역의 생활, 풍습, 교육, 문화 등을 모형과 전시물, 영상 등으로 실감나게 전해준다.

경상도 관찰사 집무실과 처소가 남아 있는 경상감영공원.

역사관을 나오면 바로 경상감영공원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선조 때 경상감영이 설치된 곳으로, 1910년부터 65년까지 경북도 도청사가 소재했다. 경북도청이 이전된 후인 1970년 옛 건물을 중심으로 공원 정문과 분수, 산책로 등을 보완해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개장했다.

1997년 경관을 해치는 담장을 허물고 공원 전체를 새로이 단장하고, 공원 내에 보존돼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 등을 역사문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게 되며 공원 명칭을 경상감영공원으로 변경했다. 현재 공원 내에는 경상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과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 그리고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 등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파노라마 풍경과 야경이 매력적인 앞산전망대.

근대골목에서 대구를 미시적으로 봤다면 앞산전망대에 올라 거시적으로 대구 시내를 보자.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닿을 수 있다. 등산로와 산책로를 가볍게 트레킹해도 좋다. 앞산전망대의 하이라이트는 대구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 왼쪽으로 멀리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대구를 감싸고 흐르는 금호강, 팔공산의 웅장한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투명한 유리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더 매력적이다.

대구=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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