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엄마가 버렸으니 같이 죽자” 아내 향한 분노, 아이에게로

국민일보

[이슈&탐사] “엄마가 버렸으니 같이 죽자” 아내 향한 분노, 아이에게로

한국사회 잔혹극 ‘살해 후 자살’ ④

입력 2019-10-10 18:45 수정 2019-10-10 23:12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는 관계 문제로 감정이 폭발해 사건이 촉발되는 경로도 확인됐다. 가해자가 가정불화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결심할 때 어린 자녀들은 감정적 ‘인질’이나 ‘분노 투영 대상’으로 여겨졌다. 부부 사이 갈등이 절정에 치달으면 한쪽에서 ‘아이와 함께 죽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뒤 범행을 저지르는 식이다.

이 유형에선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형태의 범행 패턴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프로파일러나 범죄 심리학자들은 상대 배우자에게도 소중할 수밖에 없는 자녀를 심리적 인질로 삼아 마지막 대화를 시도하거나, 배우자에 대한 분노를 자녀에게까지 연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감정 살인은 통상의 살인 범죄와 다를 바가 없다. 대상이 상대가 아닌 자녀에게 향했을 뿐이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 학대임을 방증한다.

감정 살인의 피해자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 전 상대방에게 보낸 최후통첩 성격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시댁과 크게 다투는 과정에서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A씨는 더 이상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뒤 죽음을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 잘 살아라” “번개탄을 피웠다. 정말 나랑 살기 싫으냐”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반응이 없던 남편이 A씨에게 연락을 하자 “○○ 지역에 새로 생긴 호텔”이라는 답장을 남겼다. 남편 신고로 경찰이 A씨를 발견해 범행은 미수에 그쳤고, 그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상대 배우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녀를 심리적 인질로 삼으려는 심리”라면서 “가정불화를 풀기 위한 압박이자 마지막 경고”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긴 점도 자녀를 인질로 삼은 흔적이다. 이 교수는 “인질로 인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추적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네가 끝까지 날 외면한다면 다 죽겠다는 의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의미의 경고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 문제로 인한 참극은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홧김’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B씨는 아내가 한 달 전 가출하면서부터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아내는 오랜 기간 이혼을 생각해 왔다고 했다. 화가 난 B씨는 범행 직전 통화에서 “몇 년 전부터 이혼하려고 준비했으면 왜 생활비를 받아 왔느냐. 나와 애들 생각은 하지 않느냐”고 따졌고, 아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자 ‘애들과 같이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가 우릴 버렸으니 같이 죽자.” 그는 아이를 향해 칼을 들었다.

C씨도 아내와 전화 통화로 다투었다. 아내의 병원비가 화근이었다. 아내는 C씨가 자신의 건강보다 ‘돈 걱정’을 하는 게 미웠다. 감정이 상한 아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집에 오지 마라” “네 딸도 네가 데리고 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이를 이혼 통보라 생각해 아이를 데리고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지 않자 좌절해 딸을 죽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이들 사건은 모두 범행 결심부터 실제 행동에 이르기까지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만큼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범죄라는 뜻”이라면서 “자녀를 배우자의 분신으로 여겨 분노를 투영했고, 이 분노가 우발적 범죄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인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자녀에게로 전이되고, 결국 자녀를 상대로 충동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얘기다.

살인이라는 ‘충동과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곧 이성의 상태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게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극단적 행동을 연이어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살해 후 자살 사건 가해자 사망률이 피해자보다 낮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가해자들은 수사 기관에 빠르게 자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B씨는 흉기에 찔린 아들이 잠에서 깨 살려 달라고 하자 바로 범행을 멈추고 119에 신고했다. C씨는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에 실패하자 의식을 되찾고 바로 자수했다.

이윤호 교수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녀들을 상대로 한 극단적 선택이기 때문에, 범행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어린 자녀가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가해 부모들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합적 감정 드러난 수법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191건에서 드러난 살해 수법은 번개탄 사용(66건·34.5%)과 목조름(55건·28.8%)이 가장 많았다. 흉기 사용은 22건(11.5%)으로 집계됐다. 이어 방화 및 투신 14건, 익사 10건, 음독 8건 등으로 나타났다. 흉기 사용이 가장 많은 일반 살인 범죄와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살인범죄(미수 포함) 782건 중에서 420건(53.7%)이 칼을 사용한 범죄였다.

이 같은 살해 수법에는 가해자의 심리가 담겨 있다. 목조름은 적극적 살해 행위로 해석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목조름은 살해의도가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극단적 시도를 했는데 부모만 죽고 자녀가 살아나면 상황이 더 비참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살해 후 자살의 목적과 동기에 따라 범행 수법이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대개는 자녀들을 자기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해 험악한 방법을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해자 부모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할 때 그나마 자녀가 덜 괴로워할 만한 수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투영되면 일반적인 살인 사건과 비슷한 양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자녀를 향해 흉기를 사용하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굉장한 분노 표시”라면서 “일종의 복수 심리로도 풀이된다”고 말했다.

김판 정현수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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