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관객 모독’ 연극사 새 전기… 작년 맨부커상 수상

국민일보

희곡 ‘관객 모독’ 연극사 새 전기… 작년 맨부커상 수상

지난해 수상자 폴란드 올가 토카르추크·올해 오스트리아 페터 한트케

입력 2019-10-10 21:15 수정 2019-10-10 22:58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왼쪽 사진)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토카르추크는 과거 폴란드 정부의 반유대주의 정책 등을 비판해 자국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한트케는 2014년 오스트리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폐지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A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77)와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57)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꺼번에 두 명의 수상자를 발표한 건 1974년 이후 45년 만이다. 지난해 심사위원 한 명이 ‘미투 파문’에 휘말려 수상자 발표를 한 해 걸렀던 한림원은 올해 수상자를 2명을 내겠다고 미리 밝혔고 올해 수상자로는 한트케를, 지난해 수상자로는 토카르추크를 각각 선정했다.

한림원은 10일 수상자를 공개하면서 한트케에 대해서는 “인간 체험에서 뻗어나간 갈래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했다”며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써냈다”고 평가했다. 토카르추크에 관해서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의 형태를 글로 구현한 소설가”라며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통해 백과사전 같은 열정을 표현해낸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한트케는 그라츠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을 앞둔 66년 발표한 첫 소설 ‘말벌들’이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그는 연극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희곡 ‘관객 모독’을 발표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이 작품은 전통적인 희곡 형식을 거부하면서 도발적인 언어로 위선과 부조리를 선명하게 드러낸 문제작이었다. 한국 관객에게도 유명한 이 작품은 파격 연극의 대명사로 통한다.

한트케는 73년 독일어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 프란츠카프카상을 비롯한 유수의 문학상도 휩쓸다시피했다.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올 때면 항상 거론되던 단골 후보였다. 희곡 외에도 소설 ‘소망 없는 불행’ ‘진정한 느낌의 시간’ 등이 유명하고, 독일 영화감독 빔 밴더스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이력도 있다.

류신 중앙대 유럽문화학부 교수는 “한트케를 유명하게 만든 건 역시 ‘관객 모독’일 것”이라며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에 일부러 몰입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전통적인 서사극은 아니었던 이 작품은 타성에 젖어 있던 독자나 관객의 감성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위적인 실험을 벌이면서 언어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까지 가미하곤 했다”며 “작품들에선 언어가 진리를 담보할 수 없고 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구설에 오른 적도 많았다. 특히 ‘발칸의 도살자’로 통하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지지한 적이 있어 문제가 되곤 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이와 관련된 논란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토카르추크는 50대 여성 작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수상자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치료사로 일한 경력도 있다. 토카르추크는 등단작 ‘책의 인물들의 여정’을 시작으로 소통의 부재나 여성의 실존 문제를 깊숙하게 파고든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태고의 시간들’ ‘방랑자들’ 같은 작품이 유명하고, 특히 ‘방랑자들’의 경우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었다(이 상의 2016년 수상자는 한국 작가 한강이다). 이 작품은 오는 21일 국내에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폴란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96년 이 상을 받은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이후 23년 만이다. 여성으로는 역대 15번째 수상자인데, 그의 수상은 얼마간 예상된 일이기도 하다. 세계 문학계 안팎에서는 미투운동 영향으로 여성 작가 한 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토카르추크는 유력 후보군에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영국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에서 매긴 배당률 순위에서 토카르추크는 앤 카슨(캐나다), 마리즈 콩데(프랑스) 등 여타 여성 작가들과 함께 배당률 순위 최상위권에 랭크됐었다.

그의 대표작인 ‘태고의 시간들’을 한국어로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토카르추크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면서 작은 이야기로 거대한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 있으면서도 문학의 힘을 잃지 않았던 나라”라며 “폴란드는 이번에 다섯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인데, 그만큼 문학적 저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카르추크는 ‘태고의 시간들’ 한국 출간 당시 예스24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폴란드에 한국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가 있어 한강이나 황석영, 박태원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며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한 바 있다.

수상자들에게는 각각 상금 900만 크로나(약 10억9000만원)와 노벨상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박지훈 강경루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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