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순 (16) “박 목사님에게 딱 맞는 부서가…” 총회에 첫 발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박종순 (16) “박 목사님에게 딱 맞는 부서가…” 총회에 첫 발

이단대책위원장으로 총회 봉사 시작… 전도부장 맡아 교재부터 제작, 전국 노회 돌며 전도강습회 열어

입력 2019-10-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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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목사가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충신교회 원로목사실에서 아버지 박화선 전도사가 남긴 유품인 ‘구약사기’를 들고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섬기는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1976년 충신교회에 부임한 뒤 10년 동안 교회만 생각했다. 어차피 목사는 교회 소속이다. 다른 모든 일은 시간이 남을 때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해야 한다. 첫째도 교회, 둘째도 교회다. 목회가 ‘주’라면 대외활동은 ‘객’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교회 밖의 일에만 관심이 큰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제 목회하고, 언제 기도하며, 언제 성경 연구하냐.’

89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회에서 활동하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 목사, 총회 총대로만 봉사하지 말고 부서 좀 맡아줘요. 목사님에게 딱 맞는 부서가 하나 있는데….” 그 자리는 ‘총회 사이비집단 이단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이단 문제는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교회도 늘 주의해야 하는 일 아닌가. 결국, 교회를 위한 일이었다. 수락했다. 이단대책위원장이 총회를 위해 봉사했던 첫 출발점이었다.

열심히 했다. 연구해야 할 사안이 발생하면 그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구했다. 지역교회들이 노회를 통해 총회에 연구 의뢰하는 이단 의혹 집단들도 많았다. 공명정대하게 연구해 결과를 발표했다.

91~93년에는 총회 전도부장을 맡았다. 교회를 부흥시켜 교단을 든든히 세우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부서였다. 부장이 돼 보니 체계적인 전도 프로그램이 없었다. 총회에 맞는 훈련 방법이 필요했다. 교인을 양육해 전도에 나섰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전도’ ‘전화전도’ ‘학원전도’ ‘직장전도’를 위한 교재부터 만들었다. 그런 뒤 전국 노회를 돌며 강습회를 했다. 모든 교육에는 전도 실습이 들어 있었다. 2명씩 짝지어 오후 내내 전도하는 것이었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시내 공원들로 전도대가 파견됐다. 이튿날 전도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그런데 결실이 없었다. 목사들끼리만 구성된 전도대가 특히 부진했다. 그래서 목사 한 명과 평신도 한 명으로 팀을 짰다. 평신도가 감독관 역할을 한 셈이었다. 사실 자극제였다. 평신도도 전도하는데 목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역교회에서도 목사와 평신도가 함께 전도해야 한다. 그래야 결실을 볼 수 있다.

총회를 위해 봉사할 때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 공식회의가 열리는 날이 아니면 절대 총회본부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참견을 줄이고 목회에 충실하기 위한 조치였다. 총회 돈도 절대 쓰지 않았다. 이는 훗날 총회장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총회에는 총회장의 휴식을 위한 방이 있었다. 이곳도 사용하지 않았다.

공식일정을 위해 책정된 여비나 판공비도 다 돌려줬다. 총회 재정을 함부로 축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회 돈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 총회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소신이다.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쓰면 결국 탈이 난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누구라도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덫에 걸릴 확률이 높다. 후배들에게도 늘 강조했다. 목회자의 삶은 가지런해야 한다고. 무분별해서도 안 된다.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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