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주님만 사랑한 새 신랑… 견디다 못한 아내 “이혼합시다”

국민일보

[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주님만 사랑한 새 신랑… 견디다 못한 아내 “이혼합시다”

<8> 임신한 아내에게 헌신 강조했던 개척시절

입력 2019-10-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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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장자권목회연구소 대표가 1980년 1월 대전의 한 예식장에서 송순근 사모와 결혼식을 올리고 하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80년 3월 ‘3년 안에 성전 건축, 못하면 평생 낙도(落島)’라는 목표를 정한 나는 일단 강단에 자리를 폈다. 월요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는 서울에 가서 공부해야 했고 주말에는 강단이 잠자리였다. 돈이 없던 때라 살림도 별도로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얇은 스티로폼을 깔고 비닐 장판을 덮은 게 전부였다. 휑한 2층 홀에 합판 한 장으로 칸막이를 한 것이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석유풍로로 밥을 해 먹던 시절이었다.

당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니문 베이비를 허락하셨다. 3월 하순,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였다. 불도 때지 않은 방에서 이제 막 아이를 잉태한 착한 아내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낮에도 이불을 둘러쓰고 있어야 할 만큼 몸과 마음이 시리도록 힘든 시기였다.

남편이란 사람은 주중에는 서울의 신학교에 올라갔고 주말이면 내려와 강단에서 주저앉아 함께 잠도 자지 않았다. 이제 갓 결혼한 신부 입장에서 견디기 힘든 고문 같은 환경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개척을 시작하면서 부르짖는 기도에 생명을 걸었다. 바라볼 분은 오직 주님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도움을 부탁하는 일밖에 없었다. 부르짖어 기도하다 피곤하면 강단에서 새우잠을 잤다.

걸핏하면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사모했다. 금식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아내가 “전도사님은 금식에 미쳤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한 끼, 하루, 3일, 5일, 일주일 등의 금식을 자주 하고 있었다. 자연히 몸이 약해졌고 기력이 쇠해 갔다.

서른하나의 새신랑은 스물여섯의 신부가 독수공방으로 밤마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는데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내 눈에는 오직 목회만 보였다. 목회 이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동역자로만 보였다. 그러니 사랑스레 안아 주지를 못 했다. 사랑해 주지도 못하면서 함께해 주지 못함에 불평스러운 듯한 아내를 향해 되레 믿음이 없다고 나무라고 있었다.

남편의 ‘거룩한 폭력’에 견디다 못한 아내가 하루는 이야기 좀 하자며 심상치 않게 접근해 왔다. 분위기를 직감한 나도 진지하게 아내를 마주하고 앉아 그녀의 입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던 아내가 내뱉었다. “우리 이혼해요. 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였다. 눈물을 감추며 아내가 독백처럼 내뱉는 이혼이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은 그녀가 측은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뜻밖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이제 막 시작한 주님과 진하디진한 사랑을 포기하고 아내의 품으로 가는 것은 당시로는 허용이 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고 철이 들은 후에야 내가 균형을 잃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평생 아내에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당시 아내는 1년에 몇 번이나 함께 잠을 잤는지 달력에 표시하고 있었단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여하튼 이 상황에서 무엇인가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말을 해야 했다. 나는 담담하게 착하고 여린 아내의 마음을 한 번에 돌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떤 사람은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평생 돌보며 살고 있소. 목회자의 아내로 서원한 당신이 나를 불구자로 생각하고 목회에 동반자가 돼주면 안 되겠소.” 이 말 한마디가 본래 사명감이 투철했던 아내의 마음에 꽂혔다. 이후 이혼 이야기는 잦아들었다.

꿈과 설렘 속에 행복하게 출발한 개척교회이지만 물질적인 부담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었다. 본래 돈이 없는 데다 성도들도 없으니 물질적인 고통이 따라왔다. 나는 없으면 금식하면 됐지만, 태중에 새 생명을 잉태한 아내로서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은 좀 가난한 편이었는데 아내는 물질적으로 별로 고생을 하지 않은 집에서 자랐다. 나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생선회라는 것을 구경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친정에서 생선회나 해삼, 멍게 등을 종종 먹으며 살았다.

아내가 아이를 잉태하고 나서 갑자기 해삼과 멍게가 먹고 싶다는데, 80년 당시는 그런 것들이 귀하기도 했지만, 값이 만만치 않았다. 돈도 없었지만, 그 징그러운 것을 여자가 먹는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워 “여자가 무슨 그런 것을 먹느냐”고 일축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태중의 아이가 먹고 싶었던 것을,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만 있으면 그까짓 해삼 한 마리야 못 사줬겠는가. 생각할수록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한번은 서울의 신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너무나 아픈 말을 쏟아 놓고 있었다. “어제오늘 시장 닭튀김 집 앞에서 한 시간씩 서 있다가 왔어요. 임신해서 그런지 닭튀김이 그리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냄새라도 실컷 마시고 왔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울었다.

당장 시장에 나가 닭튀김 한 마리 들고 와서 안겨 주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 나는 마음으로 울면서 속으로 말했다. ‘여보, 내가 이다음에 목회 잘되면 그때 그까짓 튀김 닭 열 마리든 백 마리든 사 주리다.’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시리도록 슬픈 추억이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장자권의 핵심은 주인의 교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의 장자들이다. 어린 양 예수님의 피에 그 옷을 씻고 거룩하게 된 자들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 안의 주인 교체다.

우리가 세례를 받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말씀이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상속자인 장자들은 주의 이름을 믿고 부르는 자들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수적 요소로 따라야 한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둘째, 입술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라는 말씀이다. 구원은 출발부터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할 때 이뤄진다. 오늘날 우리가 각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입술로는 시인했지만, 그 시인이 진실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예수님이 나의 주라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말씀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한창이었던 때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그 시절에는 누구든지 로마 황제가 신이자 주인이 돼야 했다. 로마 황제 말고 그 누구라도 다른 신이 있으면 수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

입술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죽음도 각오해야 했다. 그러한 시대에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자들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누구든지 머리로만 동의하면 입으로 시인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어느 상태인가. 나는 정말로 구원을 받았는가.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는가. 나는 정말로 천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이 세상에는 분명히 두 주인이 존재한다. 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한 주인은 마귀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선포하셨다. 구체적으로 마귀의 자녀들은 어떤 자들일까. 여러 가지로 구분하지만 가장 쉽게 한 가지만 든다면 욕심을 정복하지 못한 자들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 마귀의 자녀들이 어떠한 자들인가. 마귀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자들이다. 분명히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선포하고 계신다.

욕심은 아주 다양하다. 처음 에덴에 옛 뱀인 마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릴 때 이용한 것이 선악과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성물(聖物)이다.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거룩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많은 과일을 준비하시고 그것들을 공짜로 먹게 하셨다. 오직 선악과 하나만은 손대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마귀는 이 선악과 하나마저 따먹게 했다. 아담의 원죄 아래 있는 우리는 이 마귀의 속성인 욕심의 노예가 됐다. 각종 욕망에 눈이 멀어 온갖 추태를 벌이면서 한 치 앞을 못 보고 흑암과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

그 두 주인이 누구인가. 한 주인은 하나님 아빠이시고 한 주인은 재물이다. 그렇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재물은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서 사람들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가 아니라 이미 에덴에서부터 선악과는 존재했고 계속됐다.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크든 작든 욕망의 불나비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날아오르고 있다.

장자권을 훈련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인 장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답은 확연하다. 재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 욕망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주인이 되셔야 한다. 예수님의 자리에 돈이 앉아 있으면 망한다. 하나님의 자리에 재물이 앉아 있으면 멸망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영원한 주인이심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자권 훈련은 주인의 교체 훈련이다. 각종 욕망과 재물이 주인 됐던 자리에서 오직 예수님이 주인이 돼 다스리시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정리=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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