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유족 심리 부검해야 대책 수립 가능”… “이웃 위기 알릴 게이트키퍼 적극 육성을”

국민일보

[이슈&탐사] “유족 심리 부검해야 대책 수립 가능”… “이웃 위기 알릴 게이트키퍼 적극 육성을”

한국사회 잔혹극 ‘살해 후 자살’ ⑦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

입력 2019-10-18 04:01
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안정된 가정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 한다(아동복지법 2조 2항). 국민일보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비극적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 범죄의 피해자였다. 국가가 이들 위기의 아동을 구해내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은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등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않거나 양육 능력이 없는 아동을 보호 대상 아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시설을 통해 지원하거나 해당 보호자의 친권 제한 및 상실 조치도 취하도록 했다. 학대에는 아동의 복지를 해치는 행위와 보호자의 유기·방임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 법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면서 자녀를 먼저 살해하려는 행위를 국가가 막아야 할 일이라고 이미 규정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두 명의 아이가 또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부모 손에 살해당했다. 올해 25명, 이달 들어 2주 동안 8명의 미성년 피해자가 죽었지만 정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슈&탐사팀


이구상(사진)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은 살해 후 자살 사건 유족들에 대한 심리부검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별 사례 관리와 분석이 이뤄져야만 대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부검센터는 최근 살해 후 자살 실태 파악에 착수했다.

-심리부검은 왜 필요한가.

“핵심은 자살의 경고신호를 조기 발견하는 것이다. 심리부검을 진행해야만 구체적인 조기 경고신호 유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심리부검 사례가 워낙 적다. 자살한 내 가족이 누군가를 죽이고 죽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책 마련을 위해 심리부검을 의무적으로 진행했던 국가도 있다.”

-심리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선 본인 신청이나 경찰, 지역정신건강센터 등을 통해 의뢰된 대상에 대해 심리부검에 맞는 조건인지를 확인한 뒤 진행한다. 또 정서적으로 완성 단계가 아닌 10대는 제외하고, 사망 시점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다음에 상담을 하게 된다. 상담 1주일 후 유족 상태가 어떤지 반드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유족들은 심리부검을 진행할 때 고통스러운 기억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유족에게 필요한 지원 정보도 제공된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유족 트라우마는 어떤가.

“일반적 자살 사건과는 분명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주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나. 살해 후 자살 유가족의 경우에는 ‘살인 범죄’라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까지 들 수 있다. 가족 내 살해 후 자살 피해자가 여러 명인 경우에는 더 드러내놓고 치료받기 어렵다.”

-위기 감지가 어려운 이유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저지르는 사람은 대부분 주변으로부터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일반 자살의 경우 가족 중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자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지켜볼 사람이 구조적으로 없다. 일정 기간 이상 월세가 밀린 세입자가 있는 경우 민간 주택 소유자도 신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식으로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백종우(사진)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변 사람의 사전 위기 신호를 인식해 관심을 가져주고,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게이트키퍼’ 교육이 보다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해 후 자살 위기 가정의 신호는.

“경제적 수준이 갑작스럽게 하락할 때 그 변화의 순간이 곧 위기가 된다. 살해 후 자살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족이 극단적 변화에 놓이는 경우면 위기에 더 취약해진다. 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도움을 청하면 삶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확신을 정부와 관련 기관, 언론이 계속 줘야 한다.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비극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신과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나.

“병원에서 20년간 근무하면서 ‘가족과 다 같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매일 만났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 사망한 경우는 못 봤다. 살해 후 자살을 생각하는 것과 실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다. 일단 병원과 같은 치료 서비스 안에 들어오면 자살률은 낮아진다. 병원에서 우울증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나 시민단체와 연계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현실의 문제가 당장 100% 해결되진 않아도 누군가가 함께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책을 제안한다면.

“2019년 대한민국은 핵가족화로 가정이 해체됐지만 이를 보완할 공동체는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를 감지할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 등으로 위기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위기 신호를 감지하는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해당 가정을 위한 전문 서비스 체계와 연결해줘야 한다.”

-해외는 어떻나.

“서구에서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발생한다. 미국에서 사건 발생 이후 신체·심리 부검을 같이 해봤더니 80% 이상에서 ‘정신병리가 심각했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은 모든 자살 사건에 대해 검시관이 신체·심리 부검을 같이 한다. 이후 검시관은 유가족 동의를 얻어 경찰, 사회복지사, 의료진 등을 모두 만나고 지역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모여 ‘해당 사례를 막을 방법’에 대해 토론한다. 한 사람의 사건에서 끝내지 않고 재발을 막는 예방책이 나오는 것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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