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라동철]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

국민일보

[한마당-라동철]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

입력 2019-10-21 04:05

러시아 연해주 동쪽과 일본 홋카이도 북쪽 오호츠그해에 있는 길쭉한 섬 사할린. 러시아 영토인 이곳은 한때 일본이 지배했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점령해 통치하다 45년 8월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반환했다. 이곳에는 약 3만명의 한인(재외동포)들이 살고 있다.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9년부터 45년까지 일제의 총동원령과 징용령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과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일부 등 주로 한반도 남쪽 지역 출신인 이들은 현지 탄광과 토목 공사장, 군수공장 등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일제 패망 당시 거주하던 한인은 4만명이 넘었은데 이들은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일본인 38만여명은 일본 본토로 귀환했지만 한인들은 제외됐다. 일본은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국은 해방 후 혼란에 빠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였다. 귀국이 좌절된 이들의 삶은 신산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소련 국적 취득을 거부하고 무국적 신분으로 버텼지만 정작 고국에서 이들은 오랫동안 잊힌 존재였다.

우리나라가 사할린 동포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냉전체제가 와해되던 1980년대 말이었다. 1989년 9월 한민족체전에 참가하러 189명이 서울을 찾은 게 이들의 첫 고국 방문인데 해방된 지 45년 만이었다. 90년 한·러 수교 이후 귀국길이 열렸고 한·일 공동으로 영주귀국 사업이 진행돼 지난해까지 4300여명이 서울 인천 안산 김해 등에 정착했다. 영주귀국자들에게는 주택과 생계비 등이 지원됐지만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또 겪어야 했다. 영주귀국 대상이 해방 이전 사할린 거주자로 제한돼 한인 1세들만 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배우자와 장애인 자녀로 대상이 확대됐지만 귀국자들 대다수는 자녀, 손자, 친척들과 떨어져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사할린 동포들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주귀국 대상 확대, 비영주귀국 잔류 1세의 국적 판정 및 2세 국적회복 절차 간소화, 차세대 한인들을 위한 교육·문화지원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지서명을 받고 있다. 1인 시위는 오는 30일까지 매주 월·수·금요일에 진행한다. 사할린 한인 1세들은 고령이어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에 적극 응답해야 할 때다.

라동철 논설위원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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