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지호일] 공수처라면 조국 수사하게 놔뒀을까

국민일보

[가리사니-지호일] 공수처라면 조국 수사하게 놔뒀을까

정치권력의 검찰권 집착이 차단되지 않는 한 공수처는 정치검찰 자리만 대신할 뿐

입력 2019-10-21 04:06

불쏘시개를 자처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여권은 불씨를 살리려는 풀무질이 한창이다. 격렬하게 투쟁하듯 검찰 개혁 여론전을 전개한다. 이제 여야의 전선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옮겨졌다.

‘조국 파동’을 거치면서 여권이 입은 내상과 정치적 타격은 상당하다. 가시적 개혁 성과로 지지층의 상실감을 달래고, 정치 지형을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끌고 가 중도층 지지율을 만회하는 쪽으로 반전 시나리오를 썼다면, 공수처 이슈만큼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카드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검찰 개혁 함성이 컸던 때도 없었다.

검찰 개혁을 이루자는 기치에 누구라도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도 반대하지 못한다. 다만 반드시 그 길이 공수처로 통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공수처 반대는 고위 공직자 비리를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뜻”(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는 일도양단의 이분법은 외려 의구심을 키운다. 민주당이 지난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태운 법안(백혜련안)은 공수처 설치 제안 이유로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 신설 필요성’을 들었다.

그런데 접수된 법안 내용이 이 찬란한 명분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변론으로 해도, 정치권이 과연 공수처가 명분에 맞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우선 전제인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겠느냐 하는 의심이다. 조 전 장관 가족 의혹 수사를 대하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태도와 인식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여권은 검찰이 조 전 장관 주변을 압수수색하는 순간부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적폐 청산의 유용한 칼이던 ‘윤석열 검찰’은 졸지에 역적모의를 하는 집단으로 추락했다. “미쳐 날뛰는 늑대” “주인을 무는 개” 따위의 힐난과 “당장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박이 튀어 나왔다. 사법부도 검찰과 한데 묶여 공격 타깃이 됐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양정철 원장의 민주연구원은 조 전 장관 동생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던 날 “무분별한 검찰권 남용의 방관자로 전락한 법원”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사법 영역이라 할지라도 선출된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경고장이었다.

여권이 조 전 장관 수사에서 드러낸 것은 국가 형벌권 행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 그리고 권력을 쥔 지금도 여전한 피해의식이라고 본다. 내 편을 공격하는 칼은 곧 ‘불의’라는 식의 변질된 동지애, 집단주의, 패거리 문화와도 어깨 걸고 있는.

민주당이 절대선으로 대하는 공수처라고 해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만약 공수처가 있어 조 전 장관 사건을 수사하게 됐다면, 그때의 여권은 ‘독립된 수사기구’를 존중해 지금과 같은 적의 발산 없이 수사 경과를 지켜봤을까. 조 전 장관 수사에서 보여준 여권의 대응 방식은 이런 의구심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내놓게 한다. 오히려 ‘신생’ 공수처가 겪게 될 일들이 훤히 그려진다. 공수처 역시 여권이 보는 관점에 따라 언제든 배척될 수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아니던가.

공수처는 더욱이 정치 외풍에 보다 취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백혜련안을 보면 공수처 소속 검사는 공수처장·차장을 포함해 최대 25명, 수사관은 30명 이내로 하도록 돼 있다. 2200여명의 검사와 6300명 가까운 수사관들로 구성된 거대 검찰 조직도 정치권력이 얼마든지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터다. 여기에 공수처장은 후보추천위원회 절차 등을 거친다 해도 결국은 대통령이 선호하는 사람이 오르도록 구조가 짜여 있다.

검찰 개혁의 본질은 정권의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막강한 검찰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인데, 그 결과로 대통령이 검찰, 경찰에 이어 제3의 칼을 차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 검찰권을 대하는 정치권력의 모순된 집착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극단의 정치가 먼저 바뀌지 않는 한 공수처는 산고 끝에 태어난다 해도 ‘괴물’과 ‘무용지물’ 사이를 위태롭게 오갈 운명일 수 있다. ‘정치검찰’ 자리를 ‘정치공수처’가 대신할 뿐이라면 비극이다.

지호일 온라인뉴스부 차장 blue51@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