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접촉 무서워서…” 월담 여대생들 내버려뒀다는 경찰

국민일보

“신체 접촉 무서워서…” 월담 여대생들 내버려뒀다는 경찰

관저 현관서 버티던 女시위대 11명… 여경 올 때까지 체포 못하고 기다려

입력 2019-10-21 04:03
경찰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 대사관저 앞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대학생단체가 지난 18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반대를 이유로 대사관저에 난입한 뒤 경찰은 경계태세를 한층 강화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미국 대사관저에 지난 18일 시위대가 무단 침입한 사건을 두고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시위대가 철제 사다리를 들고 와서 대사관저 담을 넘을 때까지 사실상 방치한데다 관저 안에서 버티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바로 퇴거조치를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18일 오후 3시쯤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침입했다. 먼저 시위대 19명 중 남성 2명이 의무경찰을 막아서고 나머지 17명이 미리 준비해온 철제 사다리 2개를 타고 기습적으로 담을 넘었다. 19명 중 여성이 11명, 남성은 8명이었다. 담을 넘은 17명은 마당을 가로질러 관저 현관에 도착해 “주한미군은 점령군”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미 대사관의 허락을 받은 뒤 관저로 진입해 현장에 있던 시위대 중 남성 6명을 모두 체포했지만 여성 11명은 체포하지 않고 여성 경찰관 병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성 경찰관들이 체포를 시도했다가 신체 접촉에 따라 자칫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사이 시위대는 시위 영상을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무단 침입으로 목적했던 바를 달성한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성별을 핑계로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강력사건이 벌어질 때도 현행범이 여성일 경우 범행을 방치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20일 “시위 진압 시 성별 신체 접촉에 따른 시비는 경찰에게 민감한 문제”라며 “현장에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여성 시위자를 여성 경관이 제압하는 게 불문율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또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를 일으킬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여성 경찰을 기다렸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대사관을 경비하던 인력 30여명 중에는 시위대를 제압할 여성 경찰관 인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경찰은 채용 때부터 남녀를 구분해 뽑고 업무를 배정할 때도 위험도에 따라 달리 배치한다”며 “여성 경관 비율도 15%에 못 미쳐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애초 사다리를 두 개씩이나 들고 접근해도 제지하지 못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안일하게 대처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체포된 19명 가운데 여성 2명, 남성 7명 등 총 9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9명 중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7명의 영장실질심사를 21일 열 예정이다.

대진연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남대문서 A경위의 소속과 이름, 전화번호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항의전화를 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대진연은 “남대문서에서 주동자를 찾는다며 면회를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의 ‘유치인 접견금지 요청’ 공문도 그대로 올렸다.

서울경찰청은 대사관저 경비 강화 등 뒷북 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미 대사관과 협의해 기존 대사관저를 경비하는 경찰 병력인 의경 2개 소대에 경찰관 1개 중대를 추가하기로 했다. 또 미 대사관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경찰 병력투입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또 기습시위 징후 조기 감지를 위한 경찰 내부 체계를 구축하고 사다리나 밧줄 등 월담 수단별 차단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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