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배는 곯지 않게 해주겠다며 결혼했는데…

국민일보

최소한 배는 곯지 않게 해주겠다며 결혼했는데…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9>

입력 2019-10-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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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온양순복음교회는 2004년 1월 개척 후 예배당이 부족하자 이듬해 11월 교회 2층을 조립식 건물로 증축했다.

결혼 후 사례비를 한 달에 30만원씩 받았다. 이것저것 헌금하고 나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굶어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까마귀가 날아와 일용할 양식을 주고는 사라졌다.

2004년 교회를 개척한 후 겨울을 네 번 나는 동안에 3남매를 낳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한 번도 보일러 버튼을 눌러보지 못했다. 입김이 나는 방에서 두꺼운 내복과 전기장판에만 의지한 채 추운 겨울을 보냈다.

추운 것은 그래도 참을만한데 첫아들 안드레를 낳고 기저귀 살 돈이 없어 천기저귀를 썼다. 찬 물에 똥 기저귀를 빠는데 정말 손이 끊어질 듯 아팠다. 젖이 돌지 않는 아내와 칭얼대는 아들을 보며 많이 울었다. 마트의 분유 판매대 앞에 서면 가끔 분윳값이 없어 도둑질했던 젊은 아빠의 심정이 느껴졌다.

‘고난은 파도를 타고 몰려온다더니, 이 역경의 끝은 어디일까.’ 참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첫째 안드레, 둘째 성주, 셋째 안나가 내 삶의 버팀목이 됐다.

아내는 결혼을 약속할 때 개척교회 전도사인 나에게 아주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다. “저는 옷은 얻어 입어도 되는데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참을 수 없어요. 배는 부르게 해주실 수 있죠?” 결혼 전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요. 요즘 목회는 예전과 달라요. 염려 마세요.”

하지만 약속은 몇 주 지나지 않아 지켜지지 않았다. 몇 끼를 굶는 상황이 되자 천사 같은 여인이 도끼눈을 떴다. 여자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여보. 조금만 참자.”

만삭의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다.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을까. 과일 한 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다. 어느 날 전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풋사과를 가득 채운 리어카가 보였다. 수십 번 고민했다.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아니야, 양이 많잖아. 다음 기회에 살까.’ 큰마음 먹고 3800원에 사과를 샀다.

서울 순복음대학원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임신한 아내와 함께 서울에 들렀다가 심야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왔다. 버스가 금강휴게소에 섰는데, 우동 판매대 앞에서 아내는 무엇에 홀린 듯 침을 흘리며 서 있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우동 한 그릇을 샀다. “여보, 먼저 먹어.” “아니에요. 먼저 드세요.” 우리는 우동 한 그릇을 놓고 허기진 배를 노란 단무지로 때우며 양보를 했다.

2005년 임신 8개월 만에 조산기가 있다고 했다. 한 달 생활비라고 해봐야 30만원인데, 수술했다간 큰일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순산하게 해주세요.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우리 집 형편에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선 태아의 자세가 이상해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각서에 사인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와 아이가 위급하다는 말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아내와 아기는 모두 건강했다. 돈 걱정은 까맣게 잊은 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조심스레 안으며 기쁨에 잠긴 순간 갑자기 제정신이 들었다. 병원비가 생각났던 것이다.

‘아, 이제 병원비는 어떻게 하나.’ 자연분만을 했으면 이틀 만에 퇴원이 가능했겠지만, 수술에 1주일 입원까지 하니 몇백만원이 필요했다. 무능한 가장의 설움을 누가 알까. 내 기도의 라이벌 조지 뮬러 목사님처럼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주님, 저는 개척교회 목사입니다. 주님이 개척하라고 하셔서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순산하면 병원비 없이 퇴원했겠지만,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병원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게 됐습니다. 주께서 순산케 하셨으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순산을 못 하게 하셨으니 책임을 지시옵소서!”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기도했다.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았는데 앞으로도 더욱 믿음으로 살겠다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원무과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할부로 갚겠다고 해볼 생각이었다. 1주일간 입원을 하고 이제 퇴원의 시간이 다가왔다. 원무과로 향하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런데 직원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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