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공정의 법제화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공정의 법제화

입력 2019-10-23 04:01 수정 2019-10-23 17:07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
‘대학입학 전형 조사 특별법’에 교수 제외… 납득 어려워
반드시 법제화 되도록 결집된 시민의 힘 보여줘야


하루가 멀다하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조국 일가 관련 의혹이 희한하게도 그의 법무 장관 사퇴와 동시에 꼬리를 감췄다. 더 이상 제기할 의혹이 없어서인지, 그가 사퇴한 마당에 추가 의혹을 제기할 필요성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두 달 넘게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조국 사태가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다수 국민이 상처 입은 지난 두 달이었다. 진보와 보수, 세대를 떠나 공정과 정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두 달이기도 했다.

조국 사태는 2년 만에 수많은 시민들을 다시 광장으로 불러냈다. 촛불이 타올랐던 광화문광장은 태극기로 뒤덮였다. 촛불이 태극기로 바뀌었을 뿐 광화문에 울려 퍼진 구호는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매한가지였다. 박근혜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집권한 문재인정부에서는 이전과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지면서 민심 이반, 특히 중도층 이탈이 심했다.

그의 말대로 조국은 만신창이가 돼서 물러났다. 광장의 사퇴 요구는 실현됐다. 그러나 또 하나의 요구인 정의와 공정은 실현됐는가. 조국 사태로 대표되는 불공정 구조는 사회 곳곳에 견고한 똬리를 틀고 있다. 조국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미성년 자녀의 논문 저자 등재는 조국 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국정감사를 통해 국립암센터 소속 교수 여러 명이 고등학생 자녀들을 논문 제1저자 또는 공동저자로 등재한 사실이 적발됐다. 본인이 참여한 논문에 두 명의 딸을 제1저자와 공동저자로 올린 낯 두꺼운 교수도 있었다. 교육부의 15개 대학 감사에서는 미성년 자녀를 부당하게 논문 저자로 올린 교수 10명이 적발됐다. 자녀를 논문 저자로 끼워넣기하지 않은 교수가 바보인 세상이다.

시행 중인 전형의 하나로 논술로만 신입생을 뽑는 대학이 있다고 한다. 논술은 객관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이 대학의 논술전형은 교수 및 교직원 자녀의 특혜입학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입 사정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이런 식으로 악용하니 공정성 시비가 잦아들질 않는다.

검찰이 정경심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만으로 정 교수의 유무죄를 판단할 수는 없다.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조국 부부가 딸 스펙 쌓기에 자신들의 교수 신분을 십분 활용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해서 조국 부부의 행위가 불법은 아니었더라도 불공정했던 건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와 어제 종교 지도자와의 간담회 및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이어 “합법적 제도 속에 내재된 불공정까지 모두 해소해 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숱한 불공정 사례를 보면서 이 땅의 수많은 엄마, 아빠가 교수가 못돼서, 국회의원이 못돼서 자식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교수의 딸이어서, 국회의원의 아들이어서 아주 쉽게 스펙을 쌓는데 그렇게 못해준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했다. 실력대로 평가받을 거라는 믿음이 깨지고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는 씨가 따로 있었다는 것에 시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러한 불공정이 매우 드문 현상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으니 이대로 뭉개고 갈 수는 없다. 이번이 이 같은 교육적폐, 생활적폐를 확실하게 도려낼 절호의 기회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광장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길이고 정의에도 부합한다.

우리 사회는 경험이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사건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채용된 전원이 해고되고 억울하게 탈락한 이들은 구제됐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는 것, 이것이 공정이고 정의다. 한 개인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는 대입 문제는 더더욱 엄격해야 한다.

마침 정치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원 자녀의 대학입학 전형 과정 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자유한국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국회의원·고위공직자 자녀 대학입시 전수 조사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의당은 민주당, 한국당보다 강력한 법안을 제출했다. 3당 안 공히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를 대상자로 할 뿐 교수는 제외했다. 자녀 논문 저자 끼워넣기 단골손님인 교수를 무슨 이유에서 제외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각 당의 법안 경쟁은 내년 총선용이다. 그래서 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법안을 끝까지 밀어붙인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해서다. 우리는 조국 사태로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불공정을 바로잡는, 공정의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그 비용이 그렇게 아깝지는 않을 듯싶다. 정치권이 하지 않으면 광장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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