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조국 사태의 끝자락에서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조국 사태의 끝자락에서

입력 2019-10-28 04:01

여전히 잘못 인정하지 않는 조국 일가 행태와
진정성 담아 사과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며시
넘어가려는 집권세력의 무책임한 태도 씁쓸해
소통·공감 능력 발휘하기를


80일 가까이 나라 전체를 헤집어 놓은 ‘조국 사태’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와 정경심 구속에 이어 조만간 진행될 조국의 검찰 소환과 조사는 종착점에 거의 다다랐음을 뜻한다. 조국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가 관심사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망신창이가 됐고, 아내는 구속된 상태여서 그의 구속 여부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진 않을 것 같다.

긴 터널의 끝자락에 접어들었음에도 영 개운치 않다. 일차적으로는 조국 일가의 뻔뻔함과 몰염치 때문이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달게 받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속죄하는 게 정상이다. 그래야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조국 일가의 행태는 딴판이다.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실이 아니다” “가짜뉴스다”는 변명과 부인(否認)으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이 오랜 수사 결과를 토대로 정경심씨 구속영장에 기재한 혐의는 11개에 달한다. 딸과 아들의 대학·대학원 지원 과정에서 각종 증명서를 위조했고, 사모펀드를 통해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혔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정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구속 중인 조국 5촌 조카 측이 정씨 주장을 반박하는 희한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한 가족을 이렇게까지 한다는 사실에 마음 아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오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감내하겠다는 겸허한 자세는커녕 판사 앞에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 감성팔이를 한 것이다. 게다가 느닷없는 입원과 안대 착용, 전직 대통령보다 큰 규모의 변호인단 구성 등 구속을 모면하려는 데에는 안간힘을 다했다. 검찰 조사 시간도 본인이 조절했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너무 많다.

조국의 ‘모르쇠’ 태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는데 정의를 가르쳐야 하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복직을 서둘러 신청하고, 장관과 서울대 교수 월급을 ‘알뜰하게’ 챙긴 점도 이해가 안 된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 여기에다 갑자기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출두한 조국 동생의 행태는 뭔가.

조국과 그 일가가 모두 ‘자기기만(Self Deception)’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합리화하면서 진실로 여기도록 스스로를 오도하는 심리 말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내로남불’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지 못한다지만, 조국 일가 증세는 심한 편이다. 이런 태도가 평범한 시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고 있다.

‘조국 수호’를 외치며 나라를 극도의 혼란에 빠트린 집권세력도 도긴개긴이다. 성찰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다. ‘조국이 물러나고, 정경심이 구속됐으면 된 거지, 뭘 어쩌라구?’ 식이다. 분할통치와 편가르기 정치를 끝내고 통합의 정치로 갈등을 치유해 나가겠다는 다짐은 없다. 인적 쇄신도,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 조짐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소극적이다.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순간 ‘조국 이슈’가 ‘문 대통령 이슈’로 비화되면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그 오만으로 국론분열이 절정에 달했으나, 진심을 담아 사과하지 않았다. 불공정 행위로 일가가 조사받는 이를 장관에 임명한 데 대해선 침묵하고 있으니, 대통령이 요즘 언급하는 ‘공정성 회복’이 마음에 와닿을 리 없다.

여당 역시 뻣뻣하다. ‘밀리면 끝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지도부 가운데 책임을 통감하며 물러나겠다는 이는 없다. 오히려 당이 내분에 휩싸이면 안 된다는 기이한 논리를 펴면서 ‘대충 뭉개고 가자’고 한다. 초선 의원 2명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게 전부다. 일각에서 이해찬 대표 책임론이 나오고 있지만 친문 의원들은 요즘도 조국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여권이 조국 사태를 진보와 보수의 진영 간 싸움으로 몰고 간 건 오판이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층 이탈이 확인됐듯, 조국 사태는 조국 임명에 반대하는 지지층(중도 스윙보터)과 집권세력의 대결이었다. 이를 간과한 채 ‘조국 수호=선(善), 조국 사퇴=악(惡)’이라는 이분법을 밀어붙인 결과 여권 전체가 궁지에 몰렸다. 누군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건 물론이고, ‘조국 사태를 계기로 여권이 좀 달라지겠구나’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전부 ‘나 몰라라’ 한다. 책임감 없는 이들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이유다.

난국이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 가장 높게 평가받았던 ‘국민과의 소통·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그런데, 대통령을 포함해 집권세력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