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공수처법 제대로 처리하려면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공수처법 제대로 처리하려면

입력 2019-10-30 04:01

공수처 독립의 핵심은 처장 임명권… 국회 통제 강화하길
검사와 수사관 자격에서 특정집단 연상되는 ‘조사경력’ 빼야
독단 처리 자제하고 독소 조항 제거하는 게 민의 부응하는 길


“살아있는 권력의 성공한 비리는 손도 못 대면서 야당만 때려잡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정치검찰과 그것을 고무 조장하는 부도덕한 대통령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요체입니다. 특별검사가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독립적 사정기관인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하겠습니다.”

20여년간 줄곧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부르짖어온 더불어민주당의 야당 시절 주장 같지만 아니다. 자유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목소리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맞아 한나라당이 공약으로 내건 정책이다. 검찰이 불법대선자금 수사결과를 짜맞추기했다고 성토하며 ‘바로서는 검찰 중립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받던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공수처 설치를 공약까지 했던 한나라당의 후신 한국당은 지금 공수처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당론도 17대 총선이 끝나자 돌변하긴 했다. 노무현정부가 2004년 11월 공수처 법안을 발의했지만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바뀐 뒤인 2016년 8·9전당대회에서는 집권 여당의 대표로 출마한 후보 대다수가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이런 공수처 법안이 드디어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다. 부의 시점을 놓고 여야가 대립한 가운데 29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고심 끝에 결정한 날짜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을 위한 시대적 요청의 산물이다. 한국당이 ‘친문 보위부’로 규정하며 패스트트랙 열차를 막아서고 있으나 막무가내식 저지에도 한계가 있다. 일단 여론이 한국당 편을 들고 있지 않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의 공조가 복원되면 어차피 법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당이 우려하는 그런 괴물이 되지 않도록 법안을 손질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공수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법안(더불어민주당 백혜련·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안)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악용 가능성이 있어서다. 문제 소지가 있는 조문을 대폭 손질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당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주도적 역할을 할 수는 없는가. 그간 여러 공수처 법안이 발의됐다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주요국 공직자비리수사기구 현황에 대해서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이미 분석해놓았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적절한 형태의 법안 마련은 머리를 맞대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일 테다. 핵심은 처장 임명권이다. 지금 백혜련안은 추천위원회 7명(당연직 3명,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 중 5분의 4인 6명 이상 찬성으로 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토록 돼 있다. 야당 몫이 2명이므로 야당 거부 시 추천이 안 된다. 그런데 무늬만 야당이 있어 자칫 대통령 직할부대가 된다면? 이게 걱정이라면 2016년 야당이던 민주당 박범계안대로 추천위가 단수 추천하고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2017년 법무부안도 국회의 단수 후보 선출이다. 어찌됐든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형태가 돼야 중립·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다.

수사대상 가운데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 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것도 논란이다. 일각에서 기소권 행사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협상에 달려 있지만 지금 법안대로 제한적 기소권을 부여한다면 그 대상에 판·검사와 경찰뿐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제외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판에 관한 고소·고발이 공수처에 밀려오면 재판 독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판·검사에 대해 재판이나 수사결과에 불만을 품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을 감안할 때 판·검사의 부패가 아닌 직권남용·직무유기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수사대상에서 제외하고 검찰로 이첩하면 될 일이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자격 요건에 재판·수사 외의 ‘조사업무 경력’까지 굳이 규정해 놓은 것은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공수처는 수사 전문가들로 진용을 짜야 한다. 그래야 무공이 뛰어난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사와 별 관계없는 ‘조사’라는 모호한 표현을 집어넣었다. 특정집단의 변호사나 관계자를 염두에 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이 공수처 검사의 절반을 넘을 수 없도록 한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순수성을 의심받는 문구는 삭제해야 마땅하다.

민주당은 촛불의 기세를 등에 업고 정제되지 않은 공수처 법안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려 해선 안 된다. 부의 시점까지 한 달 남짓 남은 만큼 스스로 법안을 돌아보라. 제1야당인 한국당으로선 법안이 통과된 뒤 법적 투쟁 운운하지 말고 독소 조항 제거에 진력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그것이 대다수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는 길이다.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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