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숙이랑 결혼하겠다” 폭탄 선언… 부모님 반대하자 가출

국민일보

“예숙이랑 결혼하겠다” 폭탄 선언… 부모님 반대하자 가출

홍예숙 사모의 신유의 은혜 <17>

입력 2019-10-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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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숙 사모는 1995년 2월 부산 창대교회에서 당시 전도사였던 오창균 목사와 결혼했다.

“예숙이랑 결혼하겠습니다.” 오창균 전도사님은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하다가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도사님의 부모님은 주일예배 후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앞에 아무것도 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전 교인이 놀랐다. 전도사님 부모님의 주장은 이랬다. 당신의 아들은 이제 다 나을 수 있는 정상인이고, 담임목사의 딸인 나는 평생 나을 수 없는 몸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 교인이 놀라며 웃었다. 두 분은 아들 전도사를 끌고 가듯 데리고 가버렸다. 며칠이 지나도 전도사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같이 집으로 간 뒤로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소식도 없었다.

교인들은 날이 갈수록 궁금해 했다. 말도 많았다. 내 앞이라 그랬는지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인데, 자기들이 먼저 비교하며 웃기고 있다”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참 괴로웠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맞았다.

기가 막혔다. 배신감도 들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의 어머니 집사님이셨다. “내 아들이 장기금식을 하고 있네. 순진한 아들 옆에서 꼬시지 말고 좀 놔 주면 안 되겠나.” 그냥 안수해 주고 사역을 같이하던 사이였을 뿐인데 황당했다.

갑자기 사람이 싫어졌다. 집에서는 또 다른 말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 딸이 어때서? 오 전도사 한 트럭 갔다 줘도 안 바꾼다.” 교인들도 나만 보면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느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네가 100배 낫다’ 등 내게는 한마디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다시 불렀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환자들은 여전히 몰려왔다. 기도원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갔다. 사건의 파문도 조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교회에 나타났다. 난리가 났다. “빨리 나와 보세요. 오 전도사님이 오셨어요.” 철야기도를 마치고 잠시 누워 쉬고 있을 때여서 만사가 귀찮은 시간이었다.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전도사님이 집을 완전히 나온 것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그때까지 사정을 자세히 듣게 됐다. 그때부터 알고 싶지 않던,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문제 속 주인공이 돼버렸다.

전도사님의 아버지 집사님이 아들에게 부모와 홍예숙 전도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나를 택했다고 했다. 아들의 충격적 고백에 부모님은 다른 교회로 가버리셨다. 집을 나온 전도사님은 한 학기 휴학까지 했다. 교회 옆에 방을 얻어 계속 교회에 붙어 있었다. 밥 먹을 시간만 되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는데 완전 진드기 같았다. 그의 목표는 담임목사님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 결혼을 허락받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펄펄 뛰셨다.

몇 달 뒤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대 졸업을 앞둔 전도사님의 동생도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동생까지 형의 결혼에 찬성하자 부모님은 노발대발했다. “너도 똑같은 놈이야. 집을 나가라.” 이 한마디에 집을 나왔다고 했다. 동생이 집을 나온 바람에 오히려 나와 전도사님의 결혼은 빠르게 추진되기 시작했다. 설마 하던 결혼이 이뤄지게 되자 전도사님의 부모님이 아들들 모르게 나를 만나자고 하셨다.

그렇게 잘 대해주셨던 집사님들이 하루아침에 굶은 이리처럼 달려들었다. 매몰차게 몰아쳤다. 한참 말을 듣다가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한마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 아니 전도사님이 한참 아플 적에, 저 학교 그만두게 하셨을 때 ‘내 아들 평생 책임져 달라’고 하신 말씀은 거짓이었습니까.” 그 말을 건네는 순간, 서로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목회를 하고 계셨기에 될 수 있으면 좋은 쪽으로 일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전도사님의 신학교 동기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다들 결혼해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돕고 나섰다. 전도사님은 힘을 얻었다. 부모님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잠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위해 헤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결혼을 강행했다. 우리 부모님도 끝내 허락하셨다. 온 교인이 연합해 전도사님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 무렵 전도사님의 동생도 서울신학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부모님 밑에 있었더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집을 나온 바람에 신학교 진학까지 해버렸다.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서울대를 나온,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 둘 다 하나님께 빼앗겼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빠르게 진행됐기에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결혼 날짜는 교회사역과 환자들 안수를 피해서 잡았다. 1995년 2월 14일, 날짜를 잡고 보니 밸런타인데이였다.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내 가족, 교우들, 몇 명의 지인, 그리고 오 전도사의 동생과 신대원 동기 전도사들이 결혼식 하객의 전부였다. 물론 오 전도사의 부모님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보호자가 바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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