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고통] 굴복 않고 극복하리라

국민일보

[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고통] 굴복 않고 극복하리라

입력 2019-11-01 19:15 수정 2019-11-0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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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강풍이 우리의 삶을 위협해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린 성장할 수 있다. 사진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땅끝마을 피스테라의 등대 근처에 있는 나무. 국민일보DB

고통은 생명을 낳는 진통이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경험 많고 노회한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 충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중 ‘고통’에 대한 내용이다.

“너는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주는 것이란다. 인간은 빨리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면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그러니까 인간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돼. 인간들은 고통을 당하면 자신의 방향성을 확인한단다. 그러니 고통을 주지 말고 잘나가게 내버려 두다가 한 방에 보내버려.”

인간은 고난(고통)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한다. 고난의 시간을 잘 견뎌냈을 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신이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한다.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그리스도인이 고난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은혜를 체험하는 것을 우려했다.

고난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시험한다. 루이스는 “모든 일이 형통할 때 하나님은 속삭이시지만, 고난 속에 있을 때는 큰소리로 외치신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는 고난을 겪는 동안뿐이란 것이다. 고난은 기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고통은 생명을 낳는 진통

고난은 자기 죄에서 비롯된 고난, 배신에서 오는 고난, 상실에서 오는 고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등이 있다. 고난은 인간에게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고난은 ‘내 삶을 다스리고 구원할 힘과 권한이 나에게 있다’는 망상을 몰아내 준다. 루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아직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면 주님은 거기서 아무것도 빚어내실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역경을 지나면서 텅 빈 상태가 돼야 하나님과 은혜로 채울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자기 뜻을 이뤄 가신다. 세상엔 의미 없는 상처와 고통은 없다.

팀 켈러는 ‘고통에 답하다’에서 고통과 고난은 인생에 있어서 당연하며,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는 고통과 고난을 통해 자기완성과 영적 성장이라는 더 나은 삶의 견지가 열리게 될 것이며, 고통과 고난은 그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고난이 자동으로, 또는 일종의 보상 같은 형태로 이런 자유나 행복을 빚어내는 건 아니다.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역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만 고난은 성장을 낳는다. 루터는 ‘그리스도가 대신 감당하신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남김없이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을(즉 고통 속에서 주님의 본을 따라 참고 사랑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할 때, 고난이 우리를 얼마나 심하게 헤집어 놓는지 루터는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팀 켈러의 ‘고통에 답하다’ 중에서)

고통이 내 것이 될 때

고통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근심을 없애 달라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많은 고통을 당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5~27)

조르주 드 라 투르가 1630년쯤에 그린 ‘아내에게 조롱받는 욥’. 캔버스에 유채로 프랑스 보게 에피날 고대현대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며 욥을 조롱하고 있다.

바울은 이런 고통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바울은 고통 속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고 고백했다. 바울이 말하는 ‘평강’은 근심의 부재가 아니다. 주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고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너무 잘 아신다. 배고픔 슬픔 추위 미움 배반 죽음의 고통을 너무 잘 아시는 분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죗값을 다 치르신 것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도다.”(시 34:19)

성경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걷어 내고 단단하게 만든다고 가르친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고 심지어 감옥에 던져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따라서 고난이 어떤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세속주의와 달리,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 안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

불행과 고통을 겪으면서 오히려 성장한 사람들에겐 특징이 있다. 삶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돈이나 외적 성취보다 친밀한 관계를 인생에서 더 중요시한다. 일상에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양한 대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또 종교나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인생의 시련이 새 생명을 낳는 진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난을 맞는 준비는 어쩌면 단순하다. 깊이 있는 성경 지식을 갖추고 활력이 넘치는 기도 생활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고난이란 비극 앞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쿠션이 돼준다. 어떻게 하면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먼저 기도를 통해서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을 내세워 감정을 부정하거나 통제해선 안 된다. 시편이나 욥기서 읽기를 권한다.

희망은 고통을 이기는 대안

지금 세상엔 이별의 슬픔과 생의 고통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성장하려면 가족과 사회 구성원의 지지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외상 후 성장할 힘을 얻는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회복을 거쳐 성장하는 길이다.

사람이 가진 감성의 힘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희망이 아닐까. 희망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추위와 강풍이 우리의 삶을 위협해도 감춰진 희망을 찾아낸다면 우린 성장할 수 있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현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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