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청와대에 레드팀을 許하라(Ⅱ)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청와대에 레드팀을 許하라(Ⅱ)

입력 2019-11-04 04:01

정권 초기의 잇단 인사 참사 뒤 레드팀 운영 계획 밝혔으나 지금까지 작동 흔적 없어
확증편향 심해지고 견제·균형 사라진 건 레드팀 없는그릇된 신념 정치 때문…
정권 약점을 최소화·제거하는 전략으로 국정운영 실패를 방지해야


2017년 5월 10일자에 쓴 이 난의 칼럼 제목은 ‘청와대에 레드팀을 허하라’였다. 그날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 날이었다. 글을 쓴 이유는 간단했다. 전 정권이 왜 망했는지를 상식 수준에서 냉정하게 살펴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전임 정권 내부의 소통 부재, 비정상적인 청와대 운영, 그에 따른 여권의 경직성 등으로 청와대 안에 집단사고와 확증편향성이 심해졌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망가졌다고 썼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에 레드팀(red team)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적군(레드팀) 시각에서 아군의 약점을 공격하고 전략의 허를 찌르는 연습을 하면 치명적 결함을 미리 제거하고 실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정권 초기 장차관급 인사 사고가 잇따르자 청와대는 레드팀을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레드팀을 운영한 흔적은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다. 이스라엘 총리실과 군은 주요 계획 실행 전 레드팀을 가동한다고 한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그들의 대담하고 치밀한 작전은 그래서 성공률이 높은지도 모르겠다. 쓴소리하는 레드팀은 정책결정권자의 의지와 동의가 있어야만 운영할 수 있다. 레드팀은 주류 집단 또는 정책결정그룹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제3의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가 실패냐고 묻는 질문에 “결론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답했다. 허망해도 이렇게 허망한 게 없다.

노 실장은 청와대의 조직진단을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조직진단은 경영전략에서 의도적인 조직변화를 위한 전 단계로, 문제점 파악 의도가 배어 있다. 레드팀이 필요하다는 지적들, 더 정확히는 비현실적 신념 정치에 대한 경고들을 뭉갰던 청와대가 조국 사태를 지나면서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기업들은 내부환경을 분석해 강점(strength)을 극대화, 약점(weakness)을 최소화 내지 제거하고, 외부환경을 분석해 기회(opportunities)를 활용, 위협(threats)을 억제하는 마케팅 전략을 쓴다. SWOT 분석은 정치 전략이나 국정 운영에도 충분히 활용된다. 기업과 국가의 목표는 다르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전략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외부환경인 기회와 위협은 국내적으로는 보수 야당의 공격, 국외적으로는 주변 강국들과의 이해충돌과 지정학적 문제 등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명백히 있다. 외부환경도 잘 대응했으면 이 지경까지 왔겠나 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내부환경 분석을 적용해보자.

이 정부의 강점은 태생적으로 도덕성과 공정성,정의였다. 이건 조국 사태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취임사 내용은 너저분해졌다. 조국 사태는 그동안 진보 대 보수의 대결 구도를 순식간에 기득권 대 보통사람, 공정 대 불공정의 구도로 바꿔 놓았다. 한때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적폐청산은 깔끔하지 못한 일 처리로 정치보복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결과적으로 강점의 극대화가 아니라 강점을 잃어버렸다.

약점은 정권 핵심 일부와 열성 지지자들의 배타적인 진영 논리였다. 이를 극복하고 외연 확장이 약점을 최소화하는 길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빳빳해진 진영 논리로 나라를 갈라놓았다. 국가운영 능력에 대한 일부의 회의적 시각은 상대적으로 작은 약점이었다. 그러나 1980, 90년대 방식의 신념의 정치는 자그마했던 능력의 문제를 크나큰 약점으로 확산시켰다. 약점을 최소화·제거한 게 아니라 최대화했다.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닌 남북관계는 요즘엔 약점으로 부각한 형국이다.

이번 주말(9일)로 대통령 임기가 절반을 지난다. 이제 강점은 거의 사라졌고, 새로운 강점은 없으며, 약점은 점점 최대화하고 있다. 레드팀 없는 그릇된 신념의 정치는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청와대 안이든 정부 안이든, 냉혹한 레드팀을 만들기 바란다.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라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수준 이하의 집단사고,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아닌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 오염되지 않은 레드팀이 이런 약점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미리 약점을 최소화해 그나마 선순환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도된 신념의 정치는 무책임한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던 시절, ‘고객은 왕이다’가 최고 전략이었다. 지금 이 전략을 썼다간 회사 말아먹는다. 내부 구성원을 향한 가치경영, 행복경영이 결국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경영 전략 보고서는 숱하게 많다. 전략도 시기와 환경에 따라 진화한다. ‘지지층이 왕이다’ ‘밀리면 죽는다’ ‘적을 타도해야 우리가 산다’는 그릇된 신념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국가운영을 잘할 수 있지 않겠나. 레드팀 활용으로 악순환에서 탈출하길 바란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