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픔 지닌 이들과 공감… “살아갈 힘 얻었죠”

국민일보

같은 아픔 지닌 이들과 공감… “살아갈 힘 얻었죠”

자살유가족 ‘라이프워킹’ 현장

입력 2019-11-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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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유가족의날 문화행사 참석자들이 2일 서울 연세대 캠퍼스에서 즉석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 참가자가 미래의 자신에게 쓴 손편지.

문희은(60)씨는 2일 서울 신촌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가을빛이 완연한 연세대 산책로를 걸으며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벤치에 앉아 친구와 수다 떨며 지난날을 추억했다. 2년 전 가을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3년 전 딸을 먼저 하늘로 보낸 뒤 ‘난 어떻게 이 삶을 끝내야 할까’만 생각했어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무인도에 떨어져 사는 느낌이었죠. 자조모임에 참석하면서 ‘나’를 찾지 않았다면 지금도 동굴 속 깊은 어둠에 갇혀 있었을 겁니다.”

이날 문씨 곁에선 60여명의 남녀가 함께 가을 나들이를 즐겼다. 성별, 나이, 사는 곳은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가슴에 자살유가족을 의미하는 노란색 국화꽃 배지를 달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이사장 임용택 목사)가 ‘마음, 쉼’을 주제로 마련한 문화행사에 참여하며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놨다.

‘라이프워킹’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산책코스 끝자락엔 위로를 주는 문구가 적힌 엽서와 펜, ‘느린우체통’이 마련됐다. 2년 전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은 임희진(가명)씨는 2025년 11월 2일에 엽서를 받게 될 자신에게 메시지를 적었다. ‘시간 참 빠르구나. 지금은 조금 덜 힘드니? 네 꿈이 있으니까. 꼭 해냈을 거야. 사랑해.’ 임씨는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과 공감을 나누고 남은 삶에 대한 다짐을 새기면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살유가족은 일반인에 비해 자살위험은 8.3배, 우울증 가능성은 7배 높다.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확산에 앞장서 온 라이프호프가 올해로 3회째 자살유가족을 위한 문화행사를 펼치는 이유다. 서울 서대문구 필름포럼에서 진행된 이날 행사는 휴식과 힐링에 초점을 맞췄다.

참석자들은 심신안정에 도움을 주는 핸드크림 화분 만들기, 지문으로 나무 그리기, 씨네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했다. 영화관 안에서 진행된 ‘와칭’ 코너에선 참가자들이 영상 속 진행자를 따라 손뼉 치고 마음껏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한편에선 추억의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카페 공간에선 자살유가족 전문 상담가들이 참가자들의 삶을 어루만졌다.

장진원 라이프호프 사무총장은 “1, 2회에 비해 참가자가 3배 가까이 늘었다”며 “자살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살유가족이 느끼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조성돈 라이프호프 대표는 “어떤 집단이든 성공주의에 매몰되면 개인의 아픔엔 관심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며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에 내몰린 이들을 위해 교회가 위로자로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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