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연단시키는 ‘인내’…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힘

국민일보

우리를 연단시키는 ‘인내’…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힘

한기채 목사의 거룩한 성품과 습관 <6> 인내

입력 2019-11-06 00:05 수정 2019-11-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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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가 지난해 9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의 연무대군인교회 진중 세례식에서 세례를 집례하고 있다. 중앙성결교회 제공

현대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아마 기다리는 일일 것입니다. 출근 시간에 지하철이 5분 정도 연착되거나, 인터넷이 느려 창을 여는 데 5초 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5분과 5초, 그리 긴 시간이 아님에도 그 기다림이 참 힘겹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1분 1초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내 혹은 오래 참음의 성품을 기르도록 권면하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오래 참고 인내의 모범을 보이셨듯이 우리도 인내의 성품을 갖출 것을 명령합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힘

바울은 인내가 우리를 연단시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연단은 운동선수의 훈련을 연상케 합니다. 시합을 준비하는 선수는 엄청난 양의 연습을 소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어도 충분히 훈련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일반인은 결코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훈련을 감당키 위해, 운동 선수에게는 큰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인내심은 우리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힘입니다.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같은 인간이 가진 욕망은 통제되고 조절돼야 합니다. 욕망에 휘둘려 다니면 삶 자체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인내란 힘든 것을 참고 견디는 능력일 뿐 아니라 나를 유혹하는 해로운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능력입니다. 나비 유충이 고치 안에서 오랜 시간 인고해야만 아름다운 나비로 환골탈태할 수 있듯,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인내의 시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시간의 올바른 사용법: 인내의 효율성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인내의 성품을 기르는 데 큰 걸림돌입니다. 우리가 손해 본다고 느낄 때나 지루하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기다릴 때 조금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급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준 이 땅의 삶을 누리는 대신, 시간에 쫓겨 초조함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결국, 무엇엔가 바쁘게 쫓겨 사는 ‘바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도 연신 시계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교인이 있습니다. 인내는 외면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을 잡으려고 바쁘게 쫓아가는 대신, 내면의 나침판이 가리키는 목적을 따라 살도록 중심을 잡아줍니다. 인간의 불안과 욕심을 따르는 대신,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인내하는 삶을 미련한 것으로 보는 세속적 합리성과 효율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내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인내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참고 견디는, 약한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실을 바라보며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지혜로운 농부처럼 더 크고 좋은 것을 성취하려는 지혜로운 삶의 태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인내는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더 크고 고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있는 인내

탕자의 비유(눅 15:11~32)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를 잘 보여줍니다. 유산을 미리 챙겨 술과 유흥으로 다 탕진한 못된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립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죄로 타락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인류 구원입니다. 이 때문에 당신의 독생자 생명을 십자가에 내주면서까지 인간의 죄악을 오래 참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준 인내의 목적이 우리를 향한 사랑인 것처럼, 우리의 인내도 사랑을 향할 때 거룩한 능력이 됩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 기쁨으로 고된 시간을 인내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고귀한 사랑이 인내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내라는 거룩한 성품이 없이는 실현 불가능합니다. 즉 인간적인 합리성과 효율성에만 근거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일명 ‘사랑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합니다. 인내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 기다리고 참는 것을 ‘미련하다’고 비웃는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내의 성품을 길러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인내로 성취해 본 사람은 더 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큰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훈련으로 근력을 키워나가는 것처럼 인내로 얻은 성취의 경험은 우리의 성품에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복됩니다.
한기채 목사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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