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보수 야당이 되살아 나는 길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보수 야당이 되살아 나는 길

입력 2019-11-06 04:01

조국 사태 때 재확인된 지지율 하방 고착성은 여전히 중도층 신뢰 얻지 못했다는 방증
인위적 야권 통합보다 뼈 깎는 공천 개혁 우선시 하고 보수의 정체성 뿌리부터 가다듬어야


여야 주요 정당이 총선 기획 조직을 출범시켜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내년 총선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2년가량 남기고 치러져 자연스럽게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 일본과의 마찰과 북한 핵 협상같은 외교안보 정책 등이 핵심적인 평가 항목이 될 전망이다.

정치 혁신이나 쇄신도 유권자의 판단에 주요한 척도가 될 공산이 크다. 여권의 경우 특장으로 꼽혀왔던 공정성이나 도덕성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를 다잡으려는 내부 반성과 쇄신의 강도가 유권자 판단의 몫이 될 것이다. 제1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는지를 놓고 보면 회의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쇄신 정도가 아니라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은 여권의 대실책이었던 조국 사태 와중에도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자유한국당의 유효한 지지율 상승은 없었다. 지명 66일 만에 조 전 장관이 사퇴하자 여권의 지지율은 복원됐고 한국당의 지지율은 다시 떨어졌다. 여권 지지율은 복원 탄력성이 있는 반면, 제1야당의 지지율은 하방 고착성이 농후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은 이런 현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 정권에서 떠났던 중도층이 여전히 돌아올 기미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권에 대한 중간층의 지지는 일시 하락했다가도 기대감이 남아 있으니 복원된다. 하지만 야당은 중간층의 신뢰를 얻지 못해 반사이익을 누릴 형편도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한 상태에서는 총선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대선은 치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4일 총선기획단에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혁신과 통합에 집약돼 있다. 혁신은 공천으로, 통합은 자유 우파의 대결집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 야당의 현재 형편이라면 통합보다 혁신과 개혁이 먼저다. 통합이란 이름 아래 인위적으로 정치판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과감한 물갈이 공천이 우선돼야 한다. 이합집산을 통해 일시적으로 표를 모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수당을 향해 국민 지지가 모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칙 없는 통합은 선거 철새 비판을 부르고 이는 정당 이미지 실추로 연결된다. 몇몇 의원을 더 확보한다 해도 대안 없는 정치세력으로 비토되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니 지역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고 국가이익을 지킬 능력이 없는 인물들을 과감하게 퇴장시키고 새 인물들을 기용해야 한다.

보수 야권 내에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있다. 그러나 중간층에게도 그게 핵심적인 이슈일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보수 야권의 근본적인 변화일 것이다. 그저 탄핵 문제로 서로 손가락질 하는 작태를 거둔다고 야당이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보수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재검토하고, 시대와 호흡하는 새 정책 대안들을 내놓는 게 필요하다. 분열된 보수세력의 통합은 쿨하게 처리하면 된다. 같은 당기 아래 모이기 힘들면 선거 공조도 가능하다.

보수 야당에는 그간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과 대선자금 불법 모금으로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썼을 당시는 최근에 필적할 정도로 위기감이 높았다. 보수 야당은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만들고 선거를 치러 기사회생했다. 중진들이 대거 불출마해 자연스럽게 공천 개혁이 이뤄졌다. 총선 후에는 보수 정체성을 개혁하는데 힘을 쏟았다. 비례대표 공천위원장을 맡았던 고 박세일 교수가 영입한 신진 지식인 그룹이 개혁적 보수, 발전적 보수 등의 깃발을 내걸고 선진화,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 통일 등의 새 이념을 다듬었다.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처럼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당 전체가 달라붙어 보수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뿌린 씨앗들은 두 대통령을 연속으로 탄생시킨 밑거름이 됐다. 현재로선 결말이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출발까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보수 야당은 이후에도 김종인과 김병준 같은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혁신에 박차를 가했던 경험이 있다. 환골탈태가 진부할 정도로 버리고 바꾸려는 노력이 지금의 보수 야당에는 필요하다. 보수를 재정립하는 일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정치공학에 밝은 야권 다선의원이 현재의 정치구도를 “대통령이 야당 복이 있다”고 설파했다고 한다. 강한 야당이 없으면 대통령이나 여당이 물러진다. 정의로운 야당이 없으면 정의로운 여당도 없다. 여든 야든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몇십년이 지나도 유효한 경쟁력을 지닌 정당으로 우뚝 서기 바란다. 자기 지지층에 안주하려 해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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