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문록] 개처럼 훌쩍이며 죽었다

국민일보

[반려견문록] 개처럼 훌쩍이며 죽었다

입력 2019-11-09 04:03

라이카는 개다. 유리 가가린이나 닐 암스트롱보다 앞서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동물 라이카 말이다. 사실 그는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유기견이었다. 언젠가 그의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얼굴과 등에 커다란 얼룩을 가진 흰 개였다. 아직 세상 물정에 익숙지 않은 앳된 얼굴이었다. 라이카는 옛 소련 과학자들에게 발견돼 항공의학연구소로 옮겨진 이후 비슷한 처지의 다른 후보견들을 제치고 마침내 스푸트니크2호에 탑승할 동물로 낙점되었다. 사람을 따르고 말 잘 듣는 착하고 영리한 개였음이 틀림없다. 덕분에 그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우주선 안에 꽁꽁 묶인 채 자신이 태어난 푸른 별을 떠났고, 미지의 공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1957년 11월의 일이다.

1950년대 배경의 80년대 스웨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의 주인공 잉마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라이카를 떠올렸다. 처음엔 나같이 사색적이고 영리한 개 이야기인지 알았는데, 사색적이긴 해도 맹랑하고 귀여운 열두 살 소년 잉마르의 이야기였다. 잉마르는 아픈 엄마를 위해 시골 외삼촌 집으로 옮겨졌다. 낯선 시골 마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주 라이카를 떠올렸다. ‘불쌍한 강아지 라이카를 생각하면 정말 형제같이 생각된다. 먹을 것도 충분히 주지 않고 끔찍하게도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 인간의 진보를 위해 해야만 했지만, 라이카에게 물어보고 한 것은 아니다.’ 잉마르의 내레이션은 끔찍하게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와 낯선 시골 마을로 보내진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어린 소년의 속마음을 들려주었다.

개들 중에는 라이카처럼 아주 유명해진 개들이 있다. 대부분 인류가 자신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위해 ‘물어보지 않고’ 선택한 개들이다. 최근엔 ‘코넌’이라는 벨기에산 말리노이즈종이 유명세를 탔다. TV에 나온 걸 보니까, 자그마한 라이카와는 달리 아주 크고 시커멓고 또 날렵하고 용맹스럽게 생겼다. 코넌은 미국 특수부대원이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의 수장 알바그다디를 추격하고 사살하는데 동원한 군견이다. 알바그다디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은신처의 지하 터널 안으로 도망쳤다. 그를 추격하고 위협한 것은 다름 아닌 코넌이었다. 세계 도처에서 무자비한 테러를 일삼아온 본명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하마드 알바드리 알사마라이’는 코넌의 추격을 받고 막바지에 몰리자 자살폭탄 조끼를 터트려 자폭했다. 아이들도 함께 죽었다.

“그는 절규하고 훌쩍이며 개처럼 죽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개처럼’이라거나 ‘개 같은’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반려견으로 15년을 살아온 나도 사람들이 이 말을 왜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알바그다디를 잡은 멋진 개’라며 코넌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테러조직의 수괴는 개처럼 죽었다니,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개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IS의 수괴가 정말 ‘개처럼’ 죽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한마디는 꼭 해두고 싶다. 개 같은 인생이나 개 같은 죽음이란 말은 사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해 하는 말일 뿐 실제 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사람들이 더 정직해진다면 ‘개처럼’이나 ‘개 같은’이라고 말하는 대신 ‘겁쟁이 인간처럼’이나 ‘비굴한 인간같이’라고 표현하게 될 것이다. 나는 홀로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의 죽음이 사람들이 말하는 ‘개 같은 죽음’이었다고는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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