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년 목사의 ‘예수 기도’ 레슨] 사랑하는 이 돕는 손으로 기도의 노 저어갈 때 응답이란 포구로 인도

국민일보

[김석년 목사의 ‘예수 기도’ 레슨] 사랑하는 이 돕는 손으로 기도의 노 저어갈 때 응답이란 포구로 인도

<11> 쉬지 않는 기도의 실행-중보기도

입력 2019-11-07 00:05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어느 추운 겨울날, 군복무 중인 아들을 면회 간 일이 있다. 겨울의 된바람을 맞으며 철책 부대로 가는 길이 얼마나 춥던지 지금도 그날 추위를 잊을 수가 없다. 아들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나오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엄혹한 추위를 견뎌야 할 자식 생각에 아비로서 가슴이 미어졌던 것이다. 부모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입에서 절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을 지켜주소서. 저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아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시어 이 고생을 능히 이기게 하소서.”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도를 가리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중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것을 줄 수 없고, 그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중보기도인 것이다.(출 17:8~13)

중보기도의 원리

우리의 하루하루는 분주한 업무,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 쉬지 않는 기도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주님을 의식하게 한다. 곧 정시기도 항시기도 식사기도 일과기도 중보기도를 통해 주님과 끊임없이 동행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보기도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하는 기도 중의 기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중보기도를 잘할 수 있을까.

하나, 손가락 기도를 활용하라. 손가락 하나하나에 대상을 정해 놓고 기도 때마다 그 대상을 꼽아가며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는 교회와 국가의 최고 리더들, 검지는 나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이들, 중지는 사랑하는 가족들, 약지는 복음전도자와 예비신자들, 소지는 연약한 이웃과 환우들로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손가락마다 한두 명씩 정해 기도하다가 조금씩 그 범위를 늘려 가면 그만큼 기도의 분량이 넓고 깊어질 것이다.

둘, 기도 대상자를 하나님께 맡겨라. 중보기도는 단순히 누군가를 향한 나의 기대나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말 그대로 중보(仲保), 곧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서 기도로 중재하는 것이다.(창 18:22~32, 출 32:30~32) 따라서 중보기도를 할 때는 먼저 대상자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음으로 그의 형편과 필요를 구하며, 끝으로 반드시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성령의 감화를 따라 진정으로 그를 위해 구해야 할 것을 여쭙는 것이다.(롬 8:26~27)

셋, 믿음으로 끈질기게 구하라. 일과기도나 식사기도와 달리 중보기도는 대체로 응답이 느리다. 어쩌면 평생을 두고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때로는 같은 기도를 오랫동안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의심이 들거나 실망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필요할 때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자꾸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일에 결코 지쳐서는 안 된다.”(장 칼뱅)

넷, 예의와 존중을 잃지 말라.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인 동시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기도자는 기도 대상자에게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예의와 존중을 갖추어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 보여야 하는 것이다.(고전 14:40)

영원히 돕는 손길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밀 라누는 ‘돕는 손’이란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그림). 수면 위 작은 배 한 척에 어린 소녀와 늙은 어부가 함께 있는 그림이다. 제 몸만치 육중한 노에 손을 올린 소녀의 눈망울을 보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별로 염려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가 곁에서 사랑의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함께 노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함께 노를 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배는 소녀가 아니라 전적으로 할아버지의 손에 달렸다. 그 할아버지로 인해 배는 앞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목표한 곳에 안전히 도착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란 대양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에 올라탄 존재들이다. 우리의 능력, 우리의 노력으로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기도의 노를 잡을 때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히 7:25)께서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오르신다. 우리의 힘만으로 버거운 기도의 노를 함께 저으신다. 그러므로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중보하기를 멈추지 말라. 주님께서 마침내 우리를 도우셔서 응답이란 포구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 영혼을 위해서 최선의 길을 준비하신다.”(미우라 아야코)

<김석년 서울 서초성결교회 목사>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